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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속도전 좌절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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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속도전 좌절의 교훈

입력
2009.01.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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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기세등등 할 것 같던 여권의 '속도전' 공세가 결과적으로 한풀 꺾였다. 속도전의 가장 가파른 전선이었던 국회에서의'입법 전쟁'에서 여권은 목적한 바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한승수 국무총리 등 여권 최고위 인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새해 벽두부터 '속도'를 채근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 여권의 처지는 적잖이 옹색해 보인다. 그러나 여권이 정작 중요하게 새겨야 할 것은 이번'좌절'에서 교훈을 얻지 못할 경우엔 앞으로도 똑 같은 우를 범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속도에 대한 여권의 집착이 그 자체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선의로 해석하면 속도론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결코 실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조바심이 담겨 있다. 이 같은 노심초사는 특히 시의적절한 법개정과 예산의 조기집행 등을 통한 경기부양이 절실한 시점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명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 우선 여권 내부로 시선을 돌려보면 지난해 말 국회에서 실제 행동이 시작된 때로부터 여권은 거꾸로 속도전 수행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말았다.

우선순위 등 속도전에 합당한 전략전술, 치밀한 정책적 준비, 내부 결속 및 합의수준 제고, 야당 등 협상 상대방에 대한 사전 파악 등 무엇하나 제대로 갖춘 것 없이 말만 앞섰을 뿐이다. 한나라당이 속도전의 첫 전투로 외교통상통일위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근 뒤 불요불급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단독 상정한 것은 그들의 전술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웅변해준다.

이후 벌어진 민주당에 의한 국회 폭력 및 점거 사태가 정당화될 수는 없으나 그전에 이미 여권의 자승자박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기에 더해 다시 불거진 여권의 분열은 야당과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책임있는 국정운영 차원에서 심각한 현실적 문제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여권의 한심한 상황을 지적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다음 번엔 진짜 제대로 된 여권의 속도전을 보고 싶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 이유는 이번 국회파행 사태를 거치면서 아무리 위급한 경제위기의 와중이라고 해도'속도'가 민주사회의 지도적 가치로 작동될 수 없음이 확연해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속도론에 매몰된 밀어붙이기 시도는 극한 대립을 불러왔고 결국 민주적 절차에 상처만 남긴 채 그 어떠한 시간도 단축하지 못했다. 현실의 맥락이 이러한데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여전히 속도론의 가장 강력한 독려자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상당히 우려할만한 일이다.

특히 최근 속도전이라는 실행 지침이 이념적으로는 우경화, 행태적으로는 권위주의적 방식과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위험하다"는 경보음을 보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나라를 오른쪽으로 끌고 가겠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실용을 바탕으로 한 선진화'와 '경제 살리기'를 약속했었다. 선진화를 위해선 좌익척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집권 이후의 판단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 정부가 이제 와서 대선 승리로'우경화'를 위임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에너지 낭비'라고 했던 이념전쟁에 뒤늦게 뛰어들어 국민들을'겁나게 하는'모습은 실용과는 거리가 멀다.

집권측에 민주적 가치의 고수를 요구할 때 딜레마는 소수에 의한 폭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이다. 폭력이 승리가 되지 않도록 제도적 근절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고태성 피플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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