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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그래도 한국영화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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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그래도 한국영화는 희망이다

입력
2009.01.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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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영화계는 파산을 두려워하는 자동차공장 같은 분위기다.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촬영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생계를 걱정하는 영화인도 적지 않다. 제작 규모도 눈에 띠게 줄어 들었다. '과속 스캔들'의 500만 관객 동원은 10년 가뭄 끝의 단비처럼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꿈에서도 불가능할 것이라던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그 감격을 채 즐기기도 전에 다른 영화가 기록을 갈아 치우는 열광을 거듭한 것이 불과 2~3년 전이다. '500만 관객'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세계 최고 흥행을 자랑하던 미국영화의 대작들조차 한국영화 의 개봉 일정을 살펴가며 출시를 조정하는 일도 생겼다. 유수한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일도 흔했다. 한국영화의 비약적 성장 비결을 주목하고 배우려는 움직임이 뒤따랐다.

그러나 '행복한 봄 날'은 짧았다. 관객의 환호와 열광에 취하기만 했을 뿐, 체력을 튼튼히 하고 기반을 넓히는 일에는 소홀한 결과다. 한국영화가 국내 시장을 60% 이상 점유하던 때나 40% 수준 대로 줄어든 지금이나, 자기 자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변변한 영화사를 찾기 힘들다. 몇몇 메이저 영화사는 오히려 외부 자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을 능력의 지표로 삼았다.

어느 사이에 영화 제작은 다른 사람의 돈으로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과다한 제작비, 방만한 집행, 도덕적 해이를 의심할만한 현상이 불거졌다. 제작 편수가 늘어나는데 비해 품질을 보장할 만한 영화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감독과 배우들은 자신들을 위해 영화계가 존재하는 듯 거드름을 피우는 호사를 누렸다.

흥행이 흥행을 이끌고 단기 이익을 기대하는 투기적 자본이 영화계 주변을 넘나들던 때는 드러나지 않거나 알고도 애써 모른 척 한 문제들이 이제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드러나 한국 영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영화계의 어려움은 성실함을 저버린 채 자만에 빠진 영화인들이 자초한 결과다.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고 한탄하는 바닥에는 "한국영화는 재미없다"는 관객의 냉정한 평가가 깔려있다. 관객의 신뢰가 추락한 판에 투자가 늘어날 리 없다. 인터넷 상의 불법유통, 비디오ㆍDVD 등 부가시장 붕괴 등도 좋은 콘텐츠의 지속적인 생산이 있어야 해결이 가능하다.

한국영화 위축의 가장 큰 요인이 '콘텐츠의 위기'라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제대로 된 영화만 나와준다면 그것을 상영할 영화관과 관객과 투자할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환경이 다양하게 바뀌고 IPTV와 같은 새로운 유통 방식이 등장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영화가 없으면 영화계의 실익은 기대하기 어렵다.

'과속 스캔들'을 비롯해 '미인도' '쌍화점' 등 2008년 연말 흥행을 이끈 영화들은 최선을 다해 만든 영화에는 여전히 관객이 호응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모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열쇠다. 영화진흥위원회 등이 지원을 확대하고 영화관들이 수익배분 조정 등을 통해 한국영화와 공생하는 방안을 찾는다면 영화계에 큰 격려가 될 것이다.

1970~1980년대의 부실과 침체를 극복하고 한국영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든 것은 영화인들이었다. 동시에 유례없는 호황을 사치스러운 거품으로 낭비한 것도 영화인들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딛고 대중과 관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관건은 영화인들의 의지와 실천이다. 지난 시절의 고난과 역경을 모두 이겨낸 열정과 자부심을 되살린다면 영화인들이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래도 한국영화는 희망이 있다.

조희문 인하대 연극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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