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美 오수잔나, 1981년 첫 인연 후 13년간 해외무대 이끌어… 국제 심포 참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美 오수잔나, 1981년 첫 인연 후 13년간 해외무대 이끌어… 국제 심포 참석

입력
2009.01.12 09:35
0 0

"1981년 세실극장에서 처음 본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 선생의 사물놀이 공연은 제 마음에 혁명을 일으켰어요. 공연이 끝난 뒤 김용배(1986년 작고) 선생에게 다음 공연은 언제 하느냐고 용기를 내 물었지요."

미국 출신인 벽안의 오수잔나(50)씨는 사물놀이 원년 멤버들과 이렇게 인연을 맺어 1994년까지 13년 간 이들의 해외 공연 매니지먼트를 맡았다. 현재 대성그룹 고문을 맡고 있는 그는 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사물놀이 탄생 3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가운데 '내 인생을 바꾼 사물놀이'를 주제로 한 좌담회에 참가한다.

한국말이 유창한 그는 좌담회에 앞서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화봉사단 근무를 마치고 대학의 언어 프로그램에 등록했을 때 한 강사의 안내로 사물놀이 공연을 처음 봤다"고 사물놀이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당시 사물놀이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였어요. 남사당패나 농악단에 있던 아버지 등의 영향을 받은 멤버들이 각 지방의 '베스트 리듬'을 모은 것이었으니까요." 이후 그는 사물놀이팀 사무실에 출근하다시피 했고 우연히 해외공연 요청 서류에 대한 답장 작성에 도움을 준 것을 계기로 '사물놀이 가족'이 됐다.

"때로는 해외에 한달 이상 멤버들과 함께 있었죠. 절정기의 그들을 옆에서 지켜본 것은 저의 소중한 추억입니다." 그는 또 "속상한 일도 많고 울기도 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질감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결속력이 강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1980~1990년대 초반까지 이뤄진 해외 사물놀이 공연에 대해 "공연 후 항상 워크숍을 열어 사물놀이를 성의있게 소개했고 이것을 계기로 한국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사물놀이는 분명 초기 한류 확산에 큰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오수잔나씨는 사물놀이의 발전 방안에 대해선 비틀스의 노래를 원곡 그대로만 부르지 않듯이 "전통과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나름의 색깔과 가락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가락만 알고 동작이나 춤을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가락과 동작이 분리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책적 지원과 기획력도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해외 페스티벌이나 쇼케이스 때 반드시 명성있는 평론가를 초청해 대중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한국에 머무는 이유는 사물놀이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번 심포지엄에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키스 하워드 런던대 교수, 사물놀이와 인연을 맺은 뒤 하버드대 민족음악 박사과정에 있는 캐서린 인영 리 씨 등과 함께 참가한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