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가끔 이런 풍경을 본다. 분명 승객들로 붐비는데 자리가 비어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는 얼른 앉으려다 멈칫한다. 빈자리 옆에 앉아 있는 사람 때문이다. 한 눈에 정상이 아니거나 노숙자라는 사실을 알 만큼 표정이나 행동이 이상하다. 행색도 초라하다. 심하게 악취가 나거나, 혼자 끝없이 중얼거리거나 소리치고, 아니면 아무나 보고 웃는다. 그제서야 그의 양 옆 자리가 빈 이유를 알고는 화들짝 놀라며 물러난다. 심한 지체장애인일 경우에도 반응은 비슷하다. 반대로 그들이 다가와 자신의 빈 옆 자리에 앉으면 슬그머니 일어선다.
▦어느 수녀님의 이야기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덩치 큰 청년이 널찍하게 '혼자' 앉아 있었다. 물론 옷차림도 더럽고 얼굴도 일그러져 있었다. 승객들이 흘끔거리며 그를 피했다. 멀리 떨어져 앉아 있던 수녀님 역시 이상하게 큰 덩치, 부정확한 발음, 약간은 비정상적인 행동거지에서 그가 중증 지체장애인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아뿔사! 그 청년이 일어나 자기를 향해 다가와서는 옆에 앉는 게 아닌가.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난 듯한 표정이었다. 솔직히 두렵고 무서웠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청년은 굉장히 반가워 하면서 웃고 소리쳤다. 친구 이야기도 했다. 수녀님은 중증 지체장애인이 흔히 그렇듯, 이 청년 역시 자신을 옛날 알고 지내던 수녀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지만 외로운 이 청년이 실망할까 싶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의 친구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 그 아이도 잘 있니"라고 물었다. 청년은 뺨을 수녀님 머리에 비비면서 좋아했다. 수녀님은 그 때 청년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처음 가졌던 막연한 무서움도, 더러운 냄새도 사라졌다. 한참 정답게 손까지 잡고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승객들까지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애써 외면하던 자세를 버리고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는 거예요." 먼저 내리게 된 수녀님은 청년에게 "잘 가, 다음에 또 만나"라고 했다. 그러자 청년은 말할 것도 없고 승객들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하나 둘 청년에게 말을 거는 광경을 보면서 수녀님은 생각했다. '이렇게 마음의 문을 열게 한 청년이야말로 예수가 아닐까.' 예수나 부처는 높은 곳이 아닌 이렇게 낮은 곳에 머문다.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를 넘어 그곳으로 들어가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꼭 수녀님이 아니라도.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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