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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파시즘과 친북좌익'이 싸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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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파시즘과 친북좌익'이 싸우면

입력
2009.01.08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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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의 한파에 잔뜩 움츠린 새해이지만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은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또 정겨웠다. 세상살이가 힘겨울수록 희망과 용기와 사랑을 북돋우고 나누고 싶은 게 인간의 보통 마음인 듯하다. 오로지 국민의 행복을 위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민의를 빙자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에 눈살을 찌푸리다 끝내 개의치 않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켜보기 피곤한 '막장 드라마'를 외면하는 심사와 다르지 않다.

'막장'으로 추락한 의회정치

나라 밖까지 소개된 정치판 막장 드라마의 주역들과 언론, 수다한 인터넷 댓글은 새해 길흉화복이 국회의 쌈박질로 갈릴 것처럼 연일 흥분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국민이 참으로 그리 믿고 있을까. 정치성향에 따라 어느 한쪽을 욕하고 편들기야 하겠지만, 그 싸움이 말 그대로 국리민복을 좌우할 것으로 여기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은 것이다.

싸움의 발단인 여러 쟁점 법안, 민생 법안의 의미심장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누가 옳고 그른지 굳이 따지고 싶지 않은 것은 사생결단이라도 할 듯한 정치세력의 말과 몸짓이 지나치게 과장된 때문이다. 원래 턱없이 성내고 소리지르는 이들은 대개 다른 뜻이 있는 법이다.

정치세력의 깊은 속을 다 헤아릴 재주는 없다. 다만 국회 울타리 바깥 넓은 사회의 이른바 '천하대세'를 다투려는 계산 또는 강박의식이 작용하는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국회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나라 밖까지 웃음거리가 되는 지경에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국회 논의보다 세상 민심 또는 여론의 관심과 흐름을 뜻한 대로 이끄는 게 주된 목적이고, 쟁점 법안을 둘러싼 극한적 쟁투는 그 수단일 뿐이라는 느낌이다.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바닥까지 추락시킨 정치세력은 어디쯤에선가 갑자기 정상을 되찾은 양 서로 웃으며 악수하고 마주 앉을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 극한 대결로 얻은 것을 헤아리며 기꺼워하거나, 불만을 숨긴 채 다음 기회의 대세 역전을 기약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득실 계산이 어떻게 나오든, 국회와 정상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그 후유증은 국리민복이 걸린 국정 현안을 국회와 정상 정치절차를 통해 논의하고 해결하기가 더욱 힘들어지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를테면 촛불시위로 힘을 과시한 거리의 정치, 확성기 정치가 제도권을 한층 압박하고 영역을 침범하는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질 것이 우려된다. 이걸 은근히 기대하는 정치세력도 있을지 모르나, 그야말로 스스로 의회정치의 무덤을 파면서 즐거워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더러 기우로 여기겠지만, 그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엿보인다. 단적인 징후는 이명박 정부를 '파시즘(fascism)'으로 규정,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본격 대결"을 부르짖는 이들이 버젓이 언론에 등장하는 것이다. 일찍이 조지 오웰이 갈파했듯 파시즘과 파시스트 호칭은 고유한 개념과 무관하게 혐오하는 정치세력과 정치인을 욕하고 비방하는 데 흔히 쓴다. 그러나 이런 선동적 논리를 떠드는 이가 TV 토론에까지 초대되는 상황은 왜곡된 이념 싸움이 한층 무질서하게 전개될 것을 걱정하게 한다.

대결구도 벗어난 평화공존을

그다지 유능하지 못한 정부를 파시즘으로 욕하는 아이러니를 그냥 웃어넘겨도 좋을까. 불행히도 이 정부는 극단적 대결구도를 조성하려는 기도에 스스로 호응하는 듯한 모습이다. 검찰총장이 새해 벽두 "친북좌익 세력의 발본색원"을 다짐한 것은 그리 지혜롭지 않게 보인다. 국민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체 불분명한 '친북좌익'을 엄중히 경계하는 효과를 얻기보다, 공공연하게 '내전(內戰)'을 외치는 세력을 오히려 돕는 꼴이 될 수 있다.

정쟁에 매달린 의회, 무능한 정부, 세계 경제위기 등의 불안이 쌓인 상황에서 진짜 파시즘, 나치에 힘없이 무너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는 한갓 지나간 역사일 뿐일까. 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대결보다 평화공존을 고민해야 할 때다.

강병태 논설위원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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