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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희망 찾는 사람들] <4> 대학 국문과 새내기 되는 베트남댁 주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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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희망 찾는 사람들] <4> 대학 국문과 새내기 되는 베트남댁 주심씨

입력
2009.01.08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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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고 가냘픈 몸 어디에서 그런 열정과 힘이 솟아나는 걸까. 올해 결혼 4년차에 접어든 '베트남댁' 주심(23ㆍ베트남명 차오티탐)씨가 숨가쁠 만큼 바쁘게 뛰었던 2008년의 궤적을 돌아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세 살 배기 쌍둥이 엄마로만 보내도 짧은 하루 해를 쪼개 한국어능력시험 4급(중급) 자격증을 땄고, 결혼 이주민 여성을 위한 각종 행사에 초청돼 강연하고, 이주민을 돕는 통역 및 상담사로도 뛰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10월 9일 한글날에 열린 '전국 결혼이주민여성 우리말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11월 성균관대 주최 '외국인주부 한글백일장'에서도 당당히 1등을 했다. 내친 김에 외국인 특별전형을 통해 경상대 국문학과에 합격, 올 3월이면 09학번 새내기가 된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의 비결은 주씨의 남다른 '한국어 사랑'이다. 지난달 30일 경남 진주 하대동 자택에서 만난 그가 능통한 한국어로 쏟아낸 숱한 말에는 진심어린 사랑이 배어있었다.

"한국어 참 재밌습니다. 흉내내는 소리도 많고, 베트남어에 없는 조사 붙이는 것도 재밌습니다." "한국어를 통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요리와 자원봉사, 거기에 이웃을 사랑하는 법까지 배웠죠."

주씨는 2006년 3월 결혼과 함께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말은 살다 보면 자연히 익혀지겠지" 생각했다. 그런 그가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은 쌍둥이 때문이다.

"한 강연에서 '결혼 이민자의 자녀 상당수가 언어 때문에 지체장애 판정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충격이었죠. 막 쌍둥이를 가졌을 때였거든요." 바로 집 근처 진주YWCA 한국어반에 등록했다. 한국생활 3개월 만이었다.

그 후 주씨는 입덧이 심하고 몸이 무거워져 기진맥진할 지경인데도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다. 밤도 곧잘 샜다. 그런 노력 덕에 남들보다 2,3배 빠른 속도로 한국어를 익혔다.

줄곧 주씨를 지켜봐 온 진주YWCA 이둘녀 팀장은 "주심씨는 여느 결혼이민 여성처럼 나약한 소수자로 남기보다는 실력을 길러 남을 돕는, 노력하는 주체자가 되려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씨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가족은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었다. 남편 박종팔(41)씨는 갓 결혼해 사전을 펼쳐놓고 몇 마디 단어로 간신히 의사소통을 할 때부터 '공부하는 아내'를 적극 도왔다. 망설이는 주씨의 손을 끌어 YWCA 한국어반에 넣어준 것도 남편이었다.

박씨는 틈만 나면 책을 사다 줬고 집에 오면 TV를 끄고 아내와 대화를 했다. 가까이 사는 시누이 박진순(47)씨의 도움도 컸다. 그냥 공부는 몰라도 대학까지 가는 데는 반대하던 시부모를 설득해 주었고, 긍정적인 말로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가족에게 말할 수 없이 고마움을 느끼는 그이지만, "처음엔 솔직히 불안했다"고 털어놓았다. 주위에서 너무 많은 부정적인 사례를 본 탓이다. "한국 사람은 외국인 신부가 공부를 많이 하면 도망갈 거라는 편견이 있어요. 특히 시부모는 공부하는 며느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들이 많은 '외국인 주부'가 한국에 적응하는 것을 막고 있어요."

주씨는 이런 안타까움을 혼자 느끼고만 있지 않았다. 뜻을 같이 한 결혼이주 여성 14명과 지난해 8월 '무지개 통역상담사 모임'을 결성했다. 회장도 맡았다. 이주민, 특히 여성을 위한 통역 및 상담 봉사를 하는 모임인데, 법원이나 경찰서 등에서 찾을 땐 일정한 보수도 받는다. 소문이 났는지 벌써 서울에서도 일감이 들어온단다.

매달 2,000원의 회비를 따로 걷어 노인요양원 등을 방문하기도 한다. 주씨는 "처음엔 우리가 불쌍한 사람이었는데 한국어를 배운 뒤 우리가 도와주는 사람이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주씨는 2009년을 누구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맞았다. 곧 그토록 바라던 대학생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2004년 베트남의 한 대학 수학과에 입학했다가 한 달도 채 못돼 자퇴했다. 4남매의 둘째로, 어려운 집안 형편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세 살 위 언니와 함께 미용실을 했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그는 "그땐 하늘이 온통 검게 보였다. 희망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아무리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도 외국 출신이 국문학을 하려면 버겁지 않을까. 답은 의외였다. "재미있는 한국어를 더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국문학과라서 더 설레요." 주씨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에는 한국어능력시험 최고 등급인 6급에 도전할 계획이다. '무지개 모임'을 비롯해 봉사활동도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저는 한국과 한국사람이 좋아서 (한국에) 왔습니다. 서로 돕고 함께 사는 한국이 좋습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진주=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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