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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 바닥, 저 판, 우리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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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 바닥, 저 판, 우리 동네

입력
2009.01.08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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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친구가 호텔 등급 기준을 말해 준 적이 있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고 한라산도 보이면 1급, 둘 중 하나가 보이면 2급, 둘 다 별 볼일 없으면 3급이라 한다. 직장의 등급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보통 비전을 연봉으로 계산하니까, 그렇다면 연봉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곳은 1급, 연봉이나 분위기가 괜찮은 곳은 2급, 둘 다 괴로운 곳은 3급이다. '한라산'을 비전에, 가슴이 탁 틔는 직장 문화를 '바다'에 비유해 본다면 우리네 직장은 어떤 풍경화일까?

보통 사람들에게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에 직장 생활은 삶의 주요 방편이다. 일을 통해 스스로 완전하게는 몰랐던 자신의 잠재력을 원 없이 한껏 끌어올려 볼 수 있는 사람은 운이 좋은 셈이다. 일 따로, 자아실현 따로 구분해서 대처하라는 지침이 현실성 있게 되는 이유다.

일을 시키는 측에서 볼 때는 노동력을 구매하고 사용해서 즉시 남는 게 있어야 한다. 그저 덜 여문 일꾼을 받아들여 반듯한 재목으로 훈련시키는 공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곳은 드물다. 기껏 키워 놓았다가 나가버리면 남의 회사 좋은 일만 시키는 결과라고 생각해서는 장기 투자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곶감 빼먹듯 자원 사용하고 나면 금세 조로하여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인사들로 넘쳐 날 테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일터가 사람을 키우고 사람은 일터를 성장시키는 선순환을 단기에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일까?

일꾼의 동기와 직장의 존립 이유가 함께 갈 수 있는 지평이 있을까? 현재 많은 사람들이 자기개발은커녕 존재감을 상실해가고 자아 효능감이 땅에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출구가 어디일까? 사회적으로 보면 일자리 나누는 게 더 급선무니까 연봉 문제 제기는 좀 나중으로 한다 치고 조직 문화를 좀더 근사하게 만들어 내일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 구직 때는 연봉 수준이 1차 고려 대상이지만 퇴직의 주된 동기는 직장 내 인간관계라는 말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을 성싶다.

우리 직장(조직, 기관, 회사, 업소, 가게 등 다양한 곳들)의 조직문화를 보여주는 말들을 찾아보자. 죽지 못해 하는 일의 경우, "이 바닥 얼른 떠야지"를 입에 달고 산다. 혹은 생존 압력이 너무 세서 힘겨울 때는 "이 바닥에서 살아 남으려면, 이렇게 저렇게..." 그런 노하우에 목마르다. 바닥의 끝은 막장이다.

혹은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구만"이라고 하면서 고참이 서툰 신참에게 혀를 차는 곳이라면 직장 내 안 보이는 권력 놀이가 빙그르르 돌아가는 판이다. 그러면 그곳은 눈치 없고 인맥 없는 사람에게는 살얼음판이 되기가 쉽다. 영리하게 어느 줄을 탈지 계산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이판사판 신분 상승의 역동성이 남아 있는 곳일 수도 있다.

"이 동네는 참 재밌어" 이런 말이 들리는 곳은 어떤가. '동네'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모두 모여 있다. 연봉 기준으로 서열과 사람 값이 매겨져 있는 일차원적 공간이기보다는 각자 장인 정신을 가지고 공동체에 나름대로 두텁게 기여하는 다차원적 인정의 장소다.

좋은 동료, 품위 있는 상사, 도전해 오는 후배가 있는 모듬살이는 심리적 온도를 높여준다. 얼마 후면 한 동료가 다른 동네로 전출을 한다. 그 분은 불굴의 의지와 성실함, 어려운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통해 통장에 계산되지 않는 연봉을 우리에게 곱절로 올려주었던 사람이라 못내 아쉽다.

윤혜린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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