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과속스캔들> 을 봤다. 중국 출신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제자와 함께였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통일적 관람 (단체관람)' 말고는 극장 가서 영화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친구였다. 한국에 와서도 공부하는 틈틈이 시간 나면 영화보다는 학문적 목적으로 지난 TV사극들을 주로 챙겨 봤단다. 과속스캔들>
"웃기기는 한데 알맹이 없어"?
가장 최근의 관람 영화가 "하도 시끄럽기도 하고, 여자친구와 마땅히 갈 데도 없어서" 본 <디 워> 란다. 그 영화에 대해서는 '시각적으로는 대단히 신기한데 이야기적으로는 공감이 잘 안 간' 작품으로 기억한다. <과속스캔들> 을 보는 내내 그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러나 끝나고 영화가 어땠냐는 질문에는 "웃기기는 한데 알맹이가 없어"라고 답했다. 과속스캔들> 디>
코미디에 대한 이해와 관용은 그 나라의 문화적 현대화의 한 척도이다. 짐 캐리와 잭 블랙이 주도하는 미국 코미디 영화는 여전히 가장 상업적으로 유효한 장르이다. 한류의 붐 속에서도 한국의 코미디 영화들이 일본에 수출된 예가 거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머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집단적 혹은 공동체적 삶이 희미해지는 지점에서 나타나는 개인주의를 토양으로 태어난다. 그리고는 인간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간다는 실용적 진화론보다는 인간이 신이 아니라는, 인간은 약하고 유한하다는 따뜻한 체념과 긍정으로 성장해 간다.
물론 여전히 그 중국 친구의 '알맹이 문제제기'는 유효하다. 다만 그는 코미디 서사에서 표면적 스토리와 주제를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는 원시적 엄숙주의에 빠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진짜 웃기는 영화 <과속스캔들> 의 알맹이는 무엇인가. 미혼모 문제, 변형된 가족구성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억지 논리의 또 다른 엄숙주의다. 이 영화의 알맹이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진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가문의 영광> 과 <두사부일체> 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 두사부일체> 가문의> 과속스캔들>
한국영화에서 코미디라는 장르가 유효해지기 시작한 1990년대에 나타난 이 소위 '조폭 코미디'들은 지난 15년 간 극장들을 지배해 왔다. 노래방 춤과 코믹액션으로 대표되는 슬랩스틱과 거침없는 욕과 뒤통수 때리기로 대표되는 토일렛 유머, 거기다 성적인 남성중심주의까지 결합한 이 영화들은 속편에 속편까지 양산해 가며 한국 영화시장에서 가장 확실한 상업적 장르로 자리잡아왔다. 이들의 상업적 위세에 <그녀를 믿지 마세요> 같은 세련된 코미디 영화조차 '웃기지 않는' '밋밋한' 영화로 치부됐다. 그녀를>
그러나 웃음의 코드가 단순한 만큼 빠르게 지겨워졌다. 아무리 뒤통수를 세게 때려도 뒤통수는 뒤통수였다. 즐겁게 영화를 보고서도 그 영화에 열광하는 자신을 싫어하는 관객들의 반성적 자기혐오도 이 장르의 영속에는 걸림돌이었다.
<과속스캔들> 에는 뒤통수도 없고, 욕도 없고, 조폭도 없다. 어떤 것이든지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아버지와 전혀 상투적 코미디 연기와는 거리가 먼 딸, 그리고 천진한 아이라는 세 명의 캐릭터가 있을 뿐이다. 이들은 가족의 통합이라는 스토리적 현실을 진전시키면서도 각자 영역에서 지극히 자기 몫의 유머들을 만들어 나간다. 이야기는 회복되었고, 유머는 새로워졌다. 과속스캔들>
이야기 회복한 <과속스캔들> 과속스캔들>
새로움의 요체는 전혀 새로운 세대의 관객들과 소통하는 일상성이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나 즐기는 사람 모두 <웃으면 복이 와요> 가 아닌 <개그콘서트> 세대인 것이다. "독해" "독해"를 연발하는 <개그콘서트> 유머의 핵심이 바로 관객의 일상적 약점들이 무대 위에서 개그맨들에 의해 재현되면서 다시 발견되는 일상적 인식(Recognition)이 아니던가. 관객이 많이 들수록 평점은 떨어지던 전 세대 조폭 코미디와 <과속스캔들> 이 확연히 갈라지는 지점이다. 과속스캔들> 개그콘서트> 개그콘서트> 웃으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무리 멸시했어도, 사람들이 여전히 코미디를 보는 이유는 웃음 그리고 삶에 대한 따뜻한 긍정이다. 요즘처럼 춥고 우울한 시기에 이 코미디 영화가 특히 빛나는 이유다.
육상효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ㆍ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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