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6일 타협을 이뤄 국회가 가까스로 정상화됐지만, 국회가 지난 20일 동안 무법 천지였던 점은 냉정하게 복기하면서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18일 외교통상통일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놓고 해머 소화기 등이 동원되는 사태가 벌어진 뒤 국회는 완전히 마비됐다.
폭력과 위법이 난무하는 여야의 난장판 싸움을 보면서 "국회가 폭력의 전당으로 바뀌면서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게 됐다"(이만섭 전 국회의장) "국회가 1970년대 풍경으로 되돌아갔다"(서울대 박철희 교수)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이제는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이것만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정면 비판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한나라당의 절차 무시
우선 한나라당이 입법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쟁점 법안들을 강행 처리하려 했던 점은 분명히 잘못됐다. 다수당이 야당을 설득하기는커녕 입법 작업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한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까지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주요 쟁점 법안인 방송법과 금산분리 완화 관련 법(은행법)들을 지난해 12월 24일 뒤늦게 국회에 제출하고도 지난 연말에는 "연내 처리"를 주장했었다.
예외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법 개정안이 상임위에 배정되고 15일 지난 뒤 상정ㆍ논의될 수 있다는 국회법 등을 감안한다면, 여당은 충분한 숙성 기간을 거치지 않고 다수의 힘으로 법안을 밀어붙이려 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속도에 집착하다 보니'소통'이 없었다. 상당수 여당 의원들이 쟁점이 되는 언론 관련법의 구체적 내용을 몰랐고, 왜 '경제살리기법'으로 분류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한 초선 의원은 "솔직히 말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모르는 의원들이 대다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들도 모르는데 국민이 알 리 없다. 여야 이견이 팽팽한 만큼 법안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자면 여론의 지지를 확보했어야 했다. 그러나 내용을 모르니 제대로 된 홍보 전략이 있을 수 없었다.
민주, 민노당의 폭력성
민주당이 12일 이상 동안 본회의장 및 3개 상임위 회의실을 점거하고 농성한 것도 비난받을 대목이다. 법안 심사와 토론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점거농성이야말로 민의의 전당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여당의 법안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하지만 의사당의 불법 점거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농성을 통해 법안 저지에 성공했지만 길게 보면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5일 국회 사무총장실 탁자 위에 올라 발을 구른 것이나 국회의장 집무실 출입문을 발로 걷어찬 것도 용납할 수 없는 폭력행위다. 민노당은 "국회 경위들이 민노당의 농성을 강제 해산한 데 대한 항의"라고 해명했지만 "소수 정당의 발언권도 보장돼있는데도 당 대표가 나서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따가운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회주의 원칙 붕괴
그리고 무엇보다 절차 무시, 폭력 난무로 얼룩진 국회 파행은 '다수결과 소수 의견 존중'이라는 의회주의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 경희대 박한규 교수는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고 소수 의견을 존중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야당은 다수결 원칙을 무시하고 질서를 해쳤다"면서 "민노당도 국회에서 거리투쟁 방식을 쓰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여당이 '법안 전쟁'이란 용어를 쓰면서 야당을 자극한 것이나 야당이 농성장을 국회 회의장으로 택한 것이나 모두 잘못됐다"면서 "야당의 국회도 여당의 국회도 아니고 국민의 국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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