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古稀)를 앞둔 할아버지가 아들과 딸을 상대로 부양료를 내놓으라는 소송을 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지만 이제는 시력까지 잃어가고 있어 월 47만원의 연금으로는 치료는커녕 생계도 막막하다. 부양청구권을 행사(부양료 청구소송)하겠다는 것이다. 70세를 넘긴 또 다른 할아버지는 이미 부양청구권을 행사해 세 아들로부터 월 36만원씩 받으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 가족 살기도 빡빡한 자식들이 모른 척 하기 때문이다.
국가복지 사각지대 점점 커져
어느 변호사의 '해법'이 걸작이다. "강제집행 밖에 없습니다. 자식의 재산을 찾아내서 집행절차에 따라 배당을 받는 것입니다." 법률가의 조언으로는 맞는 말이다. 실제로 그런 절차를 밟는 경우도 있고, 그 숫자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렴한 비용으로 신속하게 받아내 주겠다'는 부양청구소송 전문 변호사들의 세일 광고도 널려 있다.
소송을 하겠다는 할아버지는 "자식들 키운 본전 생각이 나더라고…, 몰래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어"라고 한탄했다. 기본적으로 도리의 문제고 효(孝)의 문제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과 식솔의 삶이 부모의 그것보다 못하다고 쉬 말하기 어렵다.
결국 그러한 사각지대는 생겨나게 마련이다. 동서고금이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크게 늘어나는데 해법이 민법이나 가사소송법에 의한 부모-자식간 법정다툼 밖에 없고, 법원의 판결이 실효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심각한 사회문제다.
1961년부터 시행되었던 생활보호제도가 2000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대체되었다. 소득이 없거나 빈약할 경우 최저생계비 수준을 유지하도록 국가가 소득을 보전해 주는 것인데, 수급자 선정기준은 소득액과 부양의무자 두 가지이며, 이러한 기초수급자(절대빈곤층)가 전국적으로 153만명(2007년 말)에 이르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 중이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흉기를 휘둘렀던 사람이 기초수급자로 등록돼 구청에서 매달 돈을 받았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빈곤층이 아니라는 사실이 함께 밝혀져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해당 관청별로 대상자들을 실사하여 일부나마 '부정 수급자'를 추려내기도 했다. 아직도 부정 수급자가 더러 있을 테지만 대다수 진정한 수급자를 위한 '제도유지 비용' 정도로 넘어갈 여지도 없지 않으니 일단 접어 놓자.
수급자격을 결정하는 또 다른 기준인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어도 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라는 조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싶다. 앞에 언급한 두 할아버지의 경우 '부양의무자가 없거나'엔 해당하지 않고, '있어도 능력이 없거나' 대목은 자식들의 재산상태를 모르니 여부를 짐작할 수 없다.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임에는 분명하다고 여겨진다.
기초수급 해석에 융통성 필요
실질적으로 절대빈곤층에 해당되지만 '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요즘 흔한 말로 '인터넷 창에 기초생활보장이라고 쳐 보세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이고 나이 많지 않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하소연까지 빼곡하게 쌓여 있다. '~거나, ~거나, ~거나'라고 하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해당되면 되는 것이 상식인데, 유독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라는 대목만 그다지도 팍팍하게 해석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부양의무자가 있는데 소재를 모르는 경우 정도로 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초생활보장제를 시행하는 목적은 '부정 수급자'에게 돈 주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합당한 수급자를 찾아내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찾아가는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종합적 상담ㆍ실행 센터인 '129 지원단'을 운영한다니 기대가 크다. 여기서 해야 할 중요한 일로 '부양료 청구소송 사전 조정'도 추가되면 좋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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