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도 인터뷰 자리에서도, 무용계가 주목하는 신인 이동훈(23)씨에게서 풋내기의 쑥스러움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에도 그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될 날이 또 올까… 일단 기분은 좋지만, 제게는 요즘이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시간이에요."
세종대 무용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2006년 러시아 페름 아라베스크 국제 발레 콩쿠르 동상, 2007년 코리안 국제 발레 콩쿠르 은상, 동아 무용 콩쿠르 금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며 지난해 9월 오디션 없이 특채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지난 연말에는 '호두까기 인형'의 호두까기 왕자 역으로 프로 무대 진출 3개월 만에 전막 발레 주역으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를 발탁한 최태지 국립발레단장은 "키(181cm)가 큰 체격 조건이나 테크닉도 좋지만 무엇보다 스타성이 돋보인다"며 "이번 '호두까기 인형'에서도 주역으로서 무대를 이끌어가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기에 앞으로 기대가 크다"고 평가했다.
발레 꿈나무라면 예중과 예고, 유학으로 이어지는 게 정석화된 무용계에서 이씨는 이력만으로도 분명 눈에 띄는 존재다. 그는 발레를 학원에서 배웠다. 더욱이 중학교 3학년 때 발레에 입문하기 전까지 그는 비보이였다.
"뭐든 한 가지를 좋아하면 몰입하는 편이어서 중학교 2학년 때 힙합과 춤의 매력에 빠져들었죠. 부모님께서 제 진로를 걱정하실 즈음 무용을 전공한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발레를 알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발레가 타이즈에 토슈즈를 신고 추는 춤이라는 것조차 모를 때였죠."
당연히 발레와의 첫 만남이 쉬웠을 리 없다. 도전 3주 만에 그만뒀다. "발레의 기본 동작인 턴 아웃(Turn-outㆍ골반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두 다리가 이루는 각이 180도가 되도록 하는 동작)이 잘 안 되는 체형이어서 다리를 찢는 게 너무 아팠어요."
하지만 발레 학원을 그만둔 후 그는 이상하게도 공부하다가도 틈만 나면 다리 찢는 연습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렇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다시 시작한 발레.
무용수에겐 최악인 평발에, 비보이를 하면서 울퉁불퉁해진 상체 근육을 매끈하게 만들어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는 피나는 연습으로 이를 극복했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출전한 콩쿠르에서 동상을 수상한 이후에는 승부욕도 부쩍 강해졌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지만 저는 스스로 즐기고 있지 못하다는 자책감이 들었거든요. 무대에서 제가 뭘 하고 내려왔는지 모르겠더군요. 즐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많은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막 발레 주역으로 프로 무대에서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딘 지금, 그는 무엇보다 춤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무대에 서기 전엔 기분좋은 설렘을 경험했다고도 했다.
"누구나 쉽게 발레를 즐길 수 있도록 대중화에 힘쓰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우선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주역 발레리노인 호세 마르티네스처럼 남성미와 섬세함을 모두 갖춘 무용수가 되고 싶고요." 꿈을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자의 신명이 내비쳤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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