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의 우리 근대 서화는 지금껏 찬밥 신세였다. 역사적으로 암울한 시기였기에 연구가 소홀했던 탓도 있겠지만, 고루한 과거의 화법을 답습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렇게 뒷전으로 밀려나있던 근대 서화가 새로운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7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한국 근대서화의 재발견' 전이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가 최근 10년간 일본에서 사모은 그림과 글씨 500여점 중 120점을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골랐다.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37명이 그리고 쓴 작품들로, 대부분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이태호 교수는 "이 시기의 서화는 내용은 고루할지라도 이전과는 달리 파격적인 화면 구성과 새로운 필묵법 등 개성미가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인다"면서 "재해석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이름은 석파 이하응(1820~1898), 흥선대원군이다. 불우했던 시절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던 그 자신 또는 그가 그린 난초그림이 '석파란'(石坡蘭)이라 불렸을 만큼 독자적인 화풍의 난초그림으로 유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10폭 화첩인 '묵란첩'(墨蘭帖)과 특이한 화분에 심은 난초를 그린 '병란도'(甁蘭圖)에서 그의 서화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김규진(1868~1933)의 '월하죽림도'(月下竹林圖)는 10폭 병풍에 달과 대나무를 꽉 차게 그려넣었고, 항일운동의 군자금 조달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김진우(1882~1950)의 '묵죽도'(墨竹圖)는 대나무 2개의 명암을 극적으로 대비시킨 세련미가 돋보인다. 두 사람의 묵죽화는 감각적이고 장식적인 화풍으로 현재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운영(1852~1935)이 일본 여행 중 그린 '산수도'(山水圖)는 묵을 수직으로 반복해 찍는, 인상파의 점묘법을 연상시킬 만큼 독특한 필법을 사용했다. 화면 오른쪽에 대나무를 가득 배치하고 왼쪽에 글을 쓴 황철(1864~1930)의 '묵죽도'도 새로운 형식미를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김응원(1855~1921)의 '묵란도'(墨蘭圖)에는 친일파 이완용(1858~1926)의 글씨가 곁들여져 있고, 의친왕 이강(1877~1955), 김옥균(1851~1894), 박영효(1861~1939)의 글씨도 만날 수 있다.
우찬규 대표는 "일제강점기 같은 암흑기에도 예술의 꽃은 피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면서 "다시 흩어지기를 원하지 않기에 개별 판매는 하지 않고 미술관 개관을 희망하는 컬렉터에게 일괄 판매하거나 기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02)720-1524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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