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은 더 이상 신조어가 아니다. 애초엔 취업준비생들이 대학시절 동안 확보한 성취 수준의 총체를 가리키는 말이었던가 보다. 출신 학교와 학점, 토익 토플 점수와 각종 자격증 소지 여부, 그리고 해외연수나 인턴 경험 유무 등까지. 작금은 스펙이 대단히 훌륭하다 해도 취직이 어려운 시대지만, 그래도 스펙이 대단할수록 경쟁력이 높을 테다. 이제 스펙이라는 말은 취업준비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어떤 맞선 자리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스펙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을 한 거다. "나이는 서른다섯, 현재 연봉은 4,000만원대인데 승진이나 연봉 올라가는 것을 기대하기는커녕 잘리지 않기를 바라는 처지, 사는 데는 서울이지만 달동네에 있는 사글세 옥탑방, 차는 있을 리 없고, 취미생활은 생각도 못해봤고, 때문에 특기나 개인기는 당연히 없고, 저축해놓은 돈도 없습니다"라고, 남성은 순진하게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성이 말했다. "그런 스펙으로 맞선자리에 나오시다니, 배짱 스펙은 있으시네요." 또 어디선가는 자녀들이 자기 부모님의 스펙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스펙이 좀 되는데 아빠가 꽝이야!" 무한 스펙 경쟁시대, 토끼처럼 쉬었다 갈 여유가 없다.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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