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64) 태광실업 회장이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 인수 대가로 정대근(65)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2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법정에서 부인했다. 박 회장은 그러나 종합소득세 및 양도소득세 290여억원을 포탈한 혐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했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민병훈)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박 회장은 변호인을 통해 "20억원을 건넨 것은 맞지만 휴켐스 인수와는 관련이 없었고, 평소 농협을 위해 일한 정 회장을 돕자는 뜻이었다"며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 회장측은 또 "휴켐스 인수를 위해 준 뇌물이 아니라 친한 사이끼리 부담 없이 쓰라고 건네 준 돈이었다"며 대가성을 부인했고 "태광실업과 농협 직원들이 일부 미리 협의를 했지만 이 또한 태광실업이 낙찰받을 경우 원활한 인수를 진행하기 위해서 였다"며 입찰방해 혐의도 부인으로 일관했다.
박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은 정 전 회장도 "20억원을 쓰지 않고 정기예금으로 넣어 뒀다가 나중에 박 회장에게 돌려줬다"고 해명했다. 이에 따라 향후 재판에서도 검찰과 변호인은 20억원의 대가성 여부를 두고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회장측은 탈세 혐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시인했다. 다만 박 회장측은 "홍콩 법인에서 받은 배당금은 개인적으로 사용한 게 아니라 회사 사업 비용으로 지출했고 세종증권 주식도 소득세법상 '3%룰'(대주주의 3% 초과 지분 매매 때 양도차익에 대해 소득세를 부과하도록 한 규정)을 적용받게 되면서부터 차명으로 거래한 것"이라며 정상 참작을 호소했다.
이날 재판에서 박 회장은 변호인을 통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죄송하고 뉘우치고 있다"며 "구속이 길어질 경우 해외사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선처를 바란다"는 뜻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직접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는 재판부의 배려에는 일절 반응하지 않고 변호인을 통해서만 답변을 이어 나갔다. 반면 정 전 회장은 "억울한 일이 없도록 잘 보살펴달라"며 고개를 숙이고 직접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한편 세종증권 매각 대가로 세종캐피탈로부터 50억원을 함께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 전 회장과 남경우(65) 전 농협사료 사장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상반된 진술을 해 눈길을 끌었다.
정 전 회장은 "세종증권 인수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가 아니었고 50억원 뇌물도 검찰에서 처음 들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대해 남 전 사장은 "세종증권 건은 전혀 몰랐고 나는 (정 전 회장의) 심부름만 한 것"이라고 엇갈린 주장을 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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