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권위의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에는 경제학자들의 토론방이 개설돼 저명한 지식인들이 연일 글로벌 위기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비정통 처방'(unorthodox policy)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각국이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정책을 모조리 동원해도 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니, 책에는 없지만 그럴듯한 정책들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런 것들을 비정통 처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통 의학에서 개발된 치료법이 암 치료에 무력한 경우 사람들이 찾는 민간처방 비슷한 것이다.
이번 위기를 제대로 경고한 경제학자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경제학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영미 등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사조는 경제학자들이 만든 이론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체계적 기반도 없다. 우파 정치인과 그 외곽 연구단체, 소수 정책담당자들이 만들고 추진한 급진과격 주장일 뿐이다. 현 세계 경제의 파국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불황이나 다양한 경제위기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전형적 정통 처방은 재정지출이나 통화공급을 늘리고 이자율을 낮추는 것들이다. 각국이 시도하거나 경제학자들이 추천하는 정책들, 직접 자동차 할부회사 채권을 사준다거나 학자금 융자용 채권을 사주고, 은행을 반국유화하여 사실상 무위험 예금을 보장하고, 자금이 돌지 않는 경제부문에 무차별적으로 직접 유동성을 주입하는 일은 역사적으로도 없었고 당연히 교과서에도 없는 것들이다.
우파 급진과격 정책이 파탄나자 뒷수습을 위해 해괴한(그러니까 비주류교과서에 없는) '사회주의 정책'이 등장한 것이다. 이익을 공유하자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부실을 정부가 세금을 담보로 '사회화'하자는 것이니 전대미문의 이상한 사회주의다. 이렇게 하면 과연 세계경제는 회복될 것인가?
현 위기의 끝을 알 수 없는 이유는 기업 투자와 함께 총수요의 양대 축인 소비의 향후 움직임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는 이제 투자만큼이나 미래 전망에 의존하게 되었다. 주택구입 같은 가계의 투자, 자동차 구입 같은 내구재 소비 등 가계의 경제활동은 가계가 소유한 집값의 동향, 구입한 펀드의 수익률, 주식시장에 투자된 퇴직연금의 미래 수익률 등등에 의존한다. 그만큼 가계의 경제활동이 금융시장에 깊이 얽혀 들어가 있다. 모두가 신자유주의 20년의 결과이다.
소비가 얼어붙고 기업투자가 침체되자 각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정부수요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7,000억 달러가 넘는 부양책을 준비하고 있고 유럽 각국도 국민총생산의 약 1% 또는 그 이상의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적자는 계속될 수 없으며 결국은 민간 소비, 투자가 살아나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경제학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처방책이 없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만성 과잉소비국이 담당했던 소비수요가 꺼진 상태에서 어느 나라에서 수요가 일어날 것인가가 열쇠이다. 흑자국이지만 좀처럼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일본 독일 중국 산유국들이 미국 등의 감소하는 소비를 떠받칠 정도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1990년대 말의 IT붐, 최근 붕괴한 주택버블을 대신하여 또 다른 사기극, 폰지게임판을 누군가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구 어딘가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인가?
경제학이 권위를 회복하려면 일탈과 광기가 아닌 정상적인 방법으로 위기를 탈출하는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이제 경제학 자신을 향하고 있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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