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연세대를 시작으로 각 대학이 2009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논술고사에 들어갔다. 9일 고려대(인문), 12일 서울대(인문, 자연), 14일 서울교대ㆍ춘천교대, 20일 인하대(인문, 자연) 등 13개 대학이 2월 1일까지 시험을 치른다.
올해 정시에서는 수시모집의 비중이 확대되고 점수제로 전환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변별력이 높아진 탓에 논술을 치르는 대학이 크게 줄었다. 그러나 주요 대학에서 논술은 여전히 최종 합격을 담보하는 막판 변수로 꼽힌다. 연세대 기출 문제를 통해 정시 논술의 출제 경향을 점검한다.
인문계 논술만 본 연세대는 지난해부터 실시한 '다면사고' 형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수시 논술 때와 마찬가지로 1,500자 내외의 장문의 답안을 요구하는 문제는 없었고, 800자 2문항, 1,000자 내외 1문항이 각각 출제됐다.
문항 구성과 유형은 수시 논술과 비슷했지만 비교적 까다로웠다는 평이다. 연세대 논술 시험의 특징은 텍스트에서 핵심 개념을 추출해 이를 다른 지문, 도표 등과 연결지어 묻는 능력을 강하게 요구한다.
제시문과 문항의 출제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엉뚱한 논지를 펴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번 정시 논술은 대부분의 제시문을 고전 등의 원서에서 발췌한 탓에 독해 자체가 쉽지 않았다.
다시말해 논제의 세부 요구사항은 명확했으나 수험생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제시문으로 나와 교과과정과의 연계성을 떨어뜨렸다고 볼 수 있다.
'창조와 파괴'라는 주제 아래 ▦논지를 파악하는 독해능력 ▦특정 방안의 주장을 비판하는 논리ㆍ분석능력 ▦주장을 근거로 도표를 해석하는 추론능력 등을 고르게 평가했다.
제시문은 총 4개 지문 가운데 3개가 경제 관련 내용을 다룬 점이 눈에 띈다. 제시문 (가)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유고> 의 일부이다. 니체는 '힘'의 개념을 내세우며 세계를 자기창조와 자기파괴의 순환적 운동으로 이해한다. 유고>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란 책에서 내용을 발췌한 제시문 (나)는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경쟁과 기술 혁신을 통한 '창조적 파괴'로 규정했다. 자본주의,>
제시문 (다)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에 나온 변증법적 유물론을 소개했다. 계급 투쟁을 통한 폐쇄적 역사주의 관점을 보인다는 점에서 (나)와 대비된다. 제시문 (라)에서는 미국의 실질가계소득 증가율과 관련한 통계 자료를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 에서 인용해 제시했다. 슈퍼> 공산당>
1번은 논술의 단골 출제 유형인 세 제시문간 논지를 비교하는 문제이다. '창조와 파괴'라는 논제 자체는 단순ㆍ명료하지만 주어진 글이 다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텍스트여서 각각의 주제를 찾아내 저울질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령 창조와 파괴를 순환적 관계로 파악하는 니체의 관점을, 창조와 파괴의 관계(즉 파괴를 통한 창조)를 설정한 슘페터와 마르크스의 입장과 비교하는 등 종합적이고 비판적인 독해가 요구됐다.
2번 문항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논리 전개 능력을 살펴보고 있다. 역사 발전 과정에 대한 니체와 슘페터의 상이한 견해 중 하나를 선택해 상대를 비판해야 한다. 주장의 논리성을 갖추는 일 못지않게 이를 뒷받침하는 경험적 사례가 타당해야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통계자료를 활용한 3번 문항은 연세대 논술에서 지속적으로 출제되고 있는 추론적 사고 유형이다. 배점도 가장 높다.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슘페터와 부의 불균등한 분배를 비판하는 마르크스가 지닌 관점의 차이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통계에서는 사회 전반의 부의 증가와 계급적 차별성을 동시에 찾아내는 일이 관건이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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