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에게는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한 해였다. 과학기술계 연구기관들은 또 다시 5년 주기 구조개혁의 칼날을 기다리는 '도마 위의 생선' 처지가 되었다. 경제인문사회계의 경우 연구회를 폐지하고 국가전략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매머드급 종합연구원을 세우고 23개 연구기관을 '1부처 1기관'의 원칙에 따라 17개로 통폐합, 각 부처로 원상 복귀시킨다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과거 회귀식 개편은 잘못
그 동안 정부출연연구소가 정부의 싱크탱크 기능에 충실하지 못했다든지, 대통령의 국정 아젠다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연구회가 통제력과 조정력이 약해 조직혁신은커녕 협동연구조차 제대로 활성화시키지 못했고, 일부 방만한 경영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일부 연구기관은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과장하거나 감세가 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모순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 객관성, 신뢰성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구회를 폐지하고 출연연구소를 부처로 환원시킨다는 발상은 수긍할 수 없다. 출연연을 부처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시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수행토록 하겠다는 1999년 연구회체제 개편의 기본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그 동안 축적된 자율성의 유산마저 완전히 포기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관한 한, 연구회의 자율성은, 미흡한 점이 없지 않지만, 연구회체제가 잘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취였다. 정부 싱크탱크 기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출연연들이 우수한 연구성과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부의 싱크탱크 기능 역시 객관성과 신뢰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출연연은 과기계든 인문사회계든 지휘통제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연구기관으로서 특성을 무시한 채 정부조직 개편하듯이 유사ㆍ중복기능 통폐합이라는 단순논리로 출연연을 뒤바꾸려는 것은 우둔한 일이다. 혹자는 현대 학문의 조류로 떠오른 통섭(統攝)의 논리를 거론한다. 각 분야를 넘나들고 아우르는 통섭을 위해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통섭의 대세를 거역할 순 없다.
하지만 연구기관들이 유사하거나 중복된 연구를 한다고 통섭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연구기관들을 통폐합한다고 통섭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조직을 합쳐 연구원들을 한데 몰아 놓아야 억지로라도 통섭을 할 것이라지만 공명을 얻기 힘들다. 통섭은 조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조직을 바꾸게 만드는 동인이 될 뿐이다.
최근 안병만 교과부장관은 "통폐합이나 인력감축 계획은 없다"며 출연연 구조조정설을 일축하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로 과기계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게 정부의 시각이라면 다행이다. 2009년 업무보고에도 출연연 구조조정 얘기는 없었다. 그러나 출연연 원장직을 획기적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는 해외 석학들에게 개방하겠다는 장관의 아이디어는 KAIST의 서남표식 개혁 드라이브를 연상시킨다.
출연연체제의 개편은 전격전(Blitzkrieg) 방식으로는 안 된다. 연구기관들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나름대로 고유한 전통과 조직문화를 쌓아 온 살아있는 조직이다. 근시안적 목표로 섣불리 칼질을 하다가는 구성원의 반발은 물론, 조직 갈등, 사기 저하, 이직 등 문제를 더 키울 우려가 크다. 정부 연구개발체제 개편에 참을성 있게 시간과 자원을 할애한 선진국들의 교훈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자율과 정체성 존중해야
출연연 재도약은 99년 체제개편의 정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잘 달리는 말을 더욱 잘 달리게 하는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연구회가 제 역할을 못했다면 자율성과 실질적인 정책기능을 뒷받침해 주고, 연구기관들이 각기 고유한 정체성과 조직문화를 토대로 정부 싱크탱크와 사회적 신뢰기구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정도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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