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의 A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모(52)씨가 병원 7층 화장실 창을 깨고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2월 중순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김씨가 "수술비가 없다, 도와줄 사람도 없다"고 말해 온 것으로 미뤄, 경찰은 수술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의 수술비는 700여만원이었다.
# 지난해 11월 말께 수도권 B대학병원 응급실에 이모(54ㆍ여)씨가 실려왔다. 병원 근처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본 행인이 119 구조대에 신고한 것. 당시 이씨는 만삭의 임신부처럼 배가 불룩했고,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심장이 기능을 잃어 다른 조직에 혈액이 모이는 울혈성심부전 등으로 복수가 차 올랐지만 돈이 없어 병원을 찾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침체가 장기화 하면서 돈이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병을 키우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어렵게 병원을 찾았다가도 병원비 걱정에 치료 도중 도망치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적지 않다.
A대학병원 순환기내과 의사는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참다가 응급실에 실려오는 심근경색 환자들이 돈 때문에 병을 키우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심근경색은 심장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심장동맥 3개 중 일부가 막혀 심장근육이 죽어가는 질환으로 통증 발생 1~2시간 안에 병원에 가야 치료가 수월하다.
심장동맥이 모두 막힌 경우 사망률이 30~40%에 달한다. 그런데도 이 병원의 심근경색 환자 20% 가량이 3~4일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통증을 견디다가 병원을 찾은 경우라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들은 최근 병원들의 외래 환자수가 줄어든 것도 가장 크게는 극심한 경제난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2,000병상급 C대학병원의 지난해 11월 외래 환자수는 14만3,850명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3,700여명(2.6%)이 줄었다.
겨울철 가장 흔한 감기 환자도 줄었다. 웬만하면 돈 들여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환자가 그만큼 많아진 것.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0, 11월 감기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077만여명으로 2007년 동기 대비 7% 가량 줄었다.
병원을 찾았다가도 큰 돈이 드는 검사나 수술을 거부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명지성모병원 관계자는 "MRI 검사를 하면 뇌졸중 여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검사비 40여만원 아끼려고 검사를 받지 않는 사례가 2007년 1,055명에서 2008년 1,214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F대학병원에서는 지난해 환자가 치료비를 내지 않고 몰래 도망친 사례가 14건에 달했다.
최혁중 한양대 구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도망가는 환자, 돈을 아끼려고 봉합수술 후 병원에 오지 않고 집에서 실밥을 제거하는 환자 등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갖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진료비를 아끼려다 병을 키워 비용 부담이 되레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기업 순천향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3~4일 약을 복용하면 낫는 감기를 방치하다 기관지염, 축농증 등으로 악화해 1~2주간 고생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허춘웅 명지성모병원 원장은 "중증 질환일수록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검사비의 몇 배에 달하는 의료비를 지출해야 한다"면서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건강을 우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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