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렬
일월 아침 얼음빛 하얀, 성에꽃 흘러내린다
저 슬픈 마음 네 눈동자 속에서 흐른다
낙화를 슬퍼한 옛 시인들아, 나는 오늘
그 성에꽃들이 물이 되는 소리를 듣는가
반짝이는, 말없는, 붙잡을 수 없는 은빛 잎
창밖은 모래알이 떨고 있는 추운 아침
가질 수가 없으므로 살아 있고 아름다운
하늘과 마음만 얼지 않은 일월 한가운데
추위를 껴안고 함께 밤을 꿈꾼 소년아,
너에게 모두 보여준 만다라를 다 보았니
해가 마당에 찾아오고, 성에는 흐르는 아침
동햇가 그 엄동설한을 잊지 말고 살아라
이불을 어깨에 둘러감고 바라보던 창얼음
물이 되어 흐르는 은빛 부처, 찬란한 햇살
그때 내겐, 성에꽃을 부를 이름이 없었다
비록 붙잡을 수 없고, 인간의 지식으로 다 담을 수 없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인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성에꽃과 같은 눈부신 순간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지상의 삶이다.
성에꽃은 물이 되어 녹아 사라지고 말겠지만, 눈석임물이 되어 흐를 때 그 흐름처럼 눈부신 것도 없다. 그렇다면 햇살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물이 되어 죽어가는 성에꽃이야말로 부처요 만다라다.
부처는 꽃나무에 법당을 열고 물고기 몸속에 선원을 차릴 것이다. 그러니 정주하지 말고 흘러라. 추위를 껴안아라. 그 부처를 눈에 담은 중년의 소년아. 날이 추울수록 더 빛나는 게 별이라는 것을 너는 잘 알고 있구나.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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