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국회 내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는 등 입법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여야 지도부의 리더십이 새삼 도마에 오르고 있다. 18대 국회 출범 당시부터 제기돼온 전략 부재와 리더십 부족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원내사령탑인 홍준표 원내대표가 고비 때마다 당내 강경파의 반발에 주저앉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친이(親李) 진영이 반발의 진원지가 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은 청와대의 강경 드라이브와 맞물리곤 한다. 박희태 대표가 최근 ‘속도전’을 강조하고 나선 것을 두고도 청와대 의중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172석의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이 아직까지는 정국 운용에 있어 자율권을 제약받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8대 국회 원 구성 협상 때다. 어렵사리 여야 원내대표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 3명의 인사청문 시한을 사흘 연장하는 선에서 상임위원장 배분 등에 합의했지만, 곧바로 청와대가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추경안 및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 지난달 18일 외통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상정 과정에서 각각 이한구 예결위원장, 박진 외통위원장이 정국 경색을 무릅쓰고 강행처리에 나선 것을 두고도 청와대 교감설이 나올 정도다.
상황과 조건은 다르지만 민주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의 ‘협조적 대여관계’ 방침이 설 자리가 별로 없다. 거대 야당과 맞서기 위해선 야성(野性) 회복이 먼저라는 기류가 당내에 광범위한데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이후 여권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이러다 보니 강경파에 끌려가는 듯하던 당 지도부가 최근에는 강경론을 주도하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 원 구성 협상, 추경안 심의 때는 당 지도부가 제시한 타협안이 매번 강경론자들에게 거부됐고, 결국 한나라당으로부터 “혹 하나 떼고 나면 또 다른 혹을 달고 온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상생의 여야관계를 다짐했던 영수회담, 시급성이 강조됐던 은행 대외채무 지급보증안 처리 때도 지도부를 향한 비판이 거셌다.
이번 입법전쟁의 와중에 여야 원내대표가 한발씩 양보해 마련한 가(假)합의안이 거부된 것은 상징적이다. ‘시한을 정하지 않고 합의처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에 대해 한나라당 강경파는 민주당에 굴복했다고 비난했고, 민주당에선 원칙이 훼손됐다는 반발이 나왔다. 여야 지도부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말라”는 강경론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4일 “원내대표단이 전권을 갖고 협상에 임해달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문제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