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 양혜규(38)씨가 살고 있는 서울 아현동의 낡은 집은 마치 설치작품 같았다.
검은 줄에 길게 매달린 백열등, 숫자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그나마 시간도 안 맞는 벽시계, 2년간 한번도 작동이 안 됐다는 텔레비전, 테두리 없이 덜렁 본체만 있는 구식 거울까지.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이 집은 2006년 인천의 폐가에서 열린 그의 첫 국내 개인전 '사동 30번지'를 떠올리게 했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4년 독일로 가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씨는 카네기 인터내셔널, 상파울로 비엔날레 등 세계적 미술행사와 유수의 미술관에서 잇따라 초청받고 있는 작가다. 올해는 국내 대중에게도 성큼 다가오게 된다.
6월 개막하는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대표작가로 뽑혔기 때문이다. 소감을 묻자 양씨는 "운동선수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마치 국가대표 선수를 대하는 것 같은 격려와 기대가 생소해요. 본체 없이 이름만 떠다닐까봐, 소통하고 전달해야 할 부분이 잊혀질까봐, 경계심이 듭니다."
그래서 그는 국내 미술팬들에게도 자신의 작업을 본격적으로 '중계'하기로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불꽃놀이 같은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긴 여행 속 하나의 정거장이기에 작업의 문맥과 과정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작품세계를 정리한 책 발간을 준비하고 있고, 2월에는 한국관 커미셔너 주은지씨가 기획하는 전시 '나누기: 공공 재원'에 참여한다. 아트선재센터 로비를 도서관으로 만드는 기획이다. 내년에는 두번째 국내 개인전을 연다.
'감성적 개념미술을 추구하는 설치미술가'로 불리는 양씨는 요즘 해외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한국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줄(?)도 없이 독립적으로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기적 같다"면서 "이방인으로서 늘 비판적인 입장에 있었기에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여년을 프랑크푸르트, 파리, 런던, 일본, 뉴욕, 베를린까지 지원금을 따라 유랑극단처럼 살아왔다는 그는 클럽의 보안요원, 바텐더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활동은 몇 번의 변화를 거쳤다. 오래된 교과서에서 인쇄된 부분은 지우고 필기한 흔적만 남긴 '무명학생작가의 흔적', 공ㆍ사적 영역의 사이에 놓여진 평상을 찍은 사진 작업 등 철저하게 관찰자적 입장에 서 있던 그는 2004년 런던에서 선보인 '창고 피스'를 계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넣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을 보관할 창고가 없어 고민하다 전시장에다 포장된 상태의 작품을 쌓아놓은 것인데,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됐다.
최근에는 빛과 온도, 바람, 향기, 소리 등 보편적 감각을 동원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말하는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목적을 가진 이익집단이 아니라 개별자들이 이룬 '부재의 공동체'의 미술적 구현이 그의 관심사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후미진 위치와 협소한 크기, 복잡한 형태로 늘 아쉬움을 남겼다. 유리 외벽 때문에 빛이 많이 들어 전시를 하기엔 적당치 않다고도 한다. 그러나 올해는 오히려 이런 악조건이 기대를 부풀린다.
"주어진 것을 맞닥뜨리고 응대하는 작가"라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양씨는 "빛을 걸러내지 않고 끌어안으려 한다. 또 바람을 이용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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