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캐럴 오츠 지음ㆍ민승남 옮김/창비 발행ㆍ804쪽ㆍ1만7,000원
"마치 행복은 풍선이고 또 그 풍선은 내 머리고 그게 자꾸자꾸 크게, 더 크게 부풀다가는 결국 뻥 터져서 찢어진 고무 쪼가리들만 남을 것 같아서, 그게 미칠듯이 겁이 나."(793쪽)
한 평온한 가족이 있다. 미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 떡갈나무에 둘러싸인 그림 같은 집에 사는 멀베이니 가족이다. 자수성가해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마이클, 집안일을 즐기며 자식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전형적 주부인 코린, 책임감 강하고 학교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큰 형 마이크, 존 레넌 스타일의 안경을 콧등에 걸친 냉소적이고 똑똑한 둘째 아들 패트릭. 학교에서 따돌림받는 몸이 불편한 남학생의 댄스파티 파트너를 자청할 정도의 천사표 아가씨인 딸 매리앤, 소설의 화자인 집안의 막내둥이인 주드. 멀베이니 가족은 마치 스위트홈이란 바로 우리 가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쌓기는 어려워도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 가족의 평화일까. 딸 매리앤이 밸런타인 댄스파티가 열리던 밤 지역 유지의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모든 것이 변한다. 수치심과 자기연민에 사로잡혀 자신이 겪은 일을 부정하는 매리앤, 사실을 알고 자신의 친구인 지역 유지의 가족들을 찾아가 난동을 부리는 아버지, 분노도 이겨내지 못하고 딸의 고통도 감싸안지 못한 채 매리앤을 먼 친척에게 보내는 어머니 등 멀베이니가가 몰락해가는 과정은 처참하고 고통스럽다.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이 돼가는 아버지, 미안함과 죄책감과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하나 둘 부모 곁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는 형제들의 모습을 그릴 때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71)는 '가족은 영원한 안식처'라는 통념을 전복시키려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기댈 수 있고 받아줄 수 있는 곳은 가족'이라는 쪽을 택한다. 행복이라는 것을 불신하게 된 매리앤에게 화자인 막내 주드가 건네는 위로는 함축적이다. "가족은 그렇게 될 수가 있어. 뭔가 잘못됐는데 아무도 그걸 바로잡는 법을 몰라서 세월만 흘려보내는 거지."(753쪽)
치밀하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의 성격 창조, 교묘하게 깔아놓은 암시와 복선, 웬만한 장편소설의 두 배가 넘는 긴 분량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지구력 등 해마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원제 'We were the Mulvaneys'(1996)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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