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를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남부 지방에 뿌려진 적지 않은 눈으로 광주 공군기지 역시 조용해졌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Black Eagles)의 보금자리. 2007년 10월 21일을 마지막으로 날개를 접었던 검은 독수리들은 이 곳에서 다시 힘찬 비상을 꿈꾸고 있다.
예정된 데뷔 무대는 10월 1일 공군 창군 60주년 기념식. 팀장인 이철희(41ㆍ공사39기) 중령은 몇 번이고 "그날은 반드시 멋지게 날아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블랙이글스는 국가적 기념행사나 에어쇼 등에서 고난이도의 공중 기동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혼을 빼놓는 특수비행팀이다. 잠시 비행을 접은 건 기종 교체 때문이다.
1994년 상설 특수비행팀으로 재창단된 블랙이글스가 2007년까지 운용했던 기종은 A-37B, 일명 드래곤플라이(Dragonfly). 이제는 국산 초음속 훈련기 T-50이 그 자리를 대신 한다.
"예전에 그랬어요. 언제까지 60년대에 미국이 만든 비행기로 날아야 하는 거냐고, 술마시면서 한탄하곤 했죠." 리더인 박대서(40ㆍ공사40기) 중령(진급예정)의 기억이다. 2000년 9월부터 2003년 2월까지 블랙이글스에 있다가 지난해 재합류한 박 중령은 "T-50으로 다시 팀을 꾸린다는 얘길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고 했다.
사실 A-37B 기종이 낡긴 했지만 이렇게 빠른 퇴역은 예정에 없었다. 그러다 2006년 어린이날 수원비행장에서 일어난 추락 사고 이후 기종 교체가 본격 논의됐다.
엔진 결함으로 인한 기체 추락, 관람객 피해를 막기 위해 비상탈출을 포기한 채 끝까지 조종간을 붙잡고 있던 고 김도현 소령의 양 손. 블랙이글스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사고였던 그날의 비극은, 블랙이글스의 앞날도 바꿔 놓았다.
"김 소령의 순직이 T-50 팀 창단에 역할을 한 거죠. 그 뜻을 이어받고 기리기 위해서라도 정말 잘 해야 합니다." 팀장 이 중령이 몇 번이고 강조했던 멋진 비행은 그런 뜻이었다.
"아무튼 T-50은 정말 멋진 비행기입니다." 박 중령이 무거워진 분위기를 돌려본다. "고등 훈련기로는 세계 최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비행 후 결과를 분석하는 디브리핑 시스템은 완벽합니다."
자국이 만든 초음속 항공기로 특수비행팀을 운영하는 나라는 미국(2개 팀)에 이어 우리나라가 두 번째다. 현재 3기 편대비행까지 적응 훈련을 마친 블랙이글스는 최종적으로 A-37B 때보다 2기 늘어난 8기 비행을 펼칠 계획이다. 여기에 뛰어난 항공기 성능까지 더해 과거보다 다양하고 멋진 비행이 탄생할 것이다.
물론 항공기 성능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블랙이글스 조종사들은 '조종사 중의 조종사', '조종사 1%'로 불리는 최정예다. 교체 인원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선발하는데, 요건이 보통 까다롭지 않다.
중등 및 고등 비행훈련 성적이 모두 상위 3분의 1 안에 들어야 하고, 총 비행시간 800시간 이상으로, 비행 편대장(4기 이상 공중지휘 자격자) 자격이 필요하다. 이러다 보니 전투기 조종사 경력이 최소한 8,9년은 돼야 지원이 가능하다. 현재 팀장의 비행시간은 2,700시간, 막내 팀원도 1,000시간이다.
양은승(35ㆍ공사45기) 소령은 "여기에 인성 조사는 물론 기존 팀원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한데,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이유도 묻지 않고 탈락"이라고 설명했다. "팀워크와 신뢰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가깝게는 1,2m 간격으로 비행을 하고, 자리를 옮기고 하는데, 서로를 믿지 못하면 불가능합니다."
많은 팀원들은 오랫동안 블랙이글스를 동경해 오다 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가족들까지 이 임무를 동경해주길 바라기는 어렵다. 팀원들 상당수는 합류하기까지 가족들의 반대를 넘어서야 했다.
아주 큰 행사여서 꼭 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금도 가족들은 행사장에 잘 오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관람객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 입술을 깨물어야 하는 탓이다.
그래도 이들을 지탱하는 건 자부심과 명예다. 양 소령은 "전시가 아닌 한 전투 모습을 보여줄 수 없지만, 블랙이글스를 통해서라면 우리 공군이 얼마나 우수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며 "우리에게는 에어쇼 자체가 평시에 벌어지는 '전투'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서커스단의 곡예처럼 흥을 돋우려는 단순한 '곡예비행'이 아니라 국민에게 친근감과 신뢰감을 얻고자 하는 '특수비행'이라고 말한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도 이들에겐 큰 보람이다. 군 최초의 팬클럽(인터넷 동호회 '이글윙') 얘기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믿음과 꿈, 희망을 전하는 임무답게 이들은 다른 전투기 조종사들보다 '멋있게' 보여야 한다. 검은색 조종복과 선글라스, 헬멧 등은 모두 별도 제작돼 지급된다. 연예인처럼 사인할 일도 많다.
"그래도 전쟁이 나면 모두들 당장 전투에 투입되는 전투기 조종사일 뿐입니다." 정민철(33ㆍ공사47기) 소령(진급예정)은 궂은 날씨에 비행이 취소되자 시뮬레이션 센터로 간다며 문을 나섰다.
광주=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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