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기업들이 긴축경영으로 각종 경비와 복지혜택을 대폭 줄이자 직장인들이 이에 적응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발은커녕 감원바람에서 살아 남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도 치열하다.
2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 제조업체 W사 본사 강당에서 시무식이 열렸다. 지난해만 해도 참석하지 않는 직원들이 많았지만 올해 시무식에는 전 직원 500여명이 거의 대부분 참석했다.
김모(36) 과장은 "지난해 50명 구조조정에 이어 추가 구조조정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임원들에게 눈 도장을 찍기 위해 시무식에 적극 참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시무식에서 본사를 경기도 성남으로 이전한다는 말이 나왔는데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직원들이 관리자 눈치를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구조조정이나 회사 폐업에 대비, 생존차원에서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잡지사 직원 김모(33ㆍ여)씨는 "계속된 적자로 회사가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이직에 대비해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IT회사에 다니는 한모(38)씨는 "새해 첫 출근해 동료들과 한 이야기가 구조조정에 대한 걱정이었다"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영어학원에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많은 기업에서 직원들에 대한 복지혜택이 줄어들자 부서마다 군살빼기에 골몰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제조업체는 팀원 1인당 매년 12만원씩 지급되던 팀 운영비를 5만원으로 삭감했다.
박모(43) 팀장은 "지난해 여름에는 팀원 전체가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했었는데 올해는 회식비로 쓰기에도 빠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불필요한 회식을 최대한 줄여 월 1회 정도만 할 계획"이라고 했다.
복지혜택 감소가 점심시간을 앞당긴 곳도 있다. 광고회사 직원 이모(41)씨는 2일 점심을 먹기 위해 다른 때보다 30분 이른 오전 11시30분쯤 회사 건물 지하상가를 찾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하상가 모든 음식점에서 회사 식권을 내면 6,000원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단 한 곳에서만 식권을 이용할 수 있어 늦으면 대기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이다.
월급이 오를 기미가 없자 '생계형 금연, 금주'로 용돈을 줄이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선 직장인들도 있다. 공기업 직원 김모(35)씨는 "술과 담배를 끊어 한달 용돈을 10만원 줄이기로 했다"면서 "이 돈으로 적금을 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직원 김모(41)씨는 "담배를 사는 데 한 달 7만~8만원을 써왔다"면서 "금연하는 대신 이 돈으로 책을 사서 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36)씨는 이날 평소보다 1시간 빠른 오전 6시에 집에서 나왔다. 승용차로 압구정역 인근 사무실까지 40~50분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회사가 올해부터 주차장 이용을 팀당 1대로 제한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올해 소망은 직장에서 살아 남는 것"이라며 "출퇴근이 힘들거나 윗사람이 못마땅해도 살아 남으려면 어쩌겠느냐"고 반문했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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