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가 밝았지만 웃으며 새 희망을 노래할 수 없다. 엄혹한 현실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세기적 위기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새해 경제전망은 암울하기 짝이 없고, 수출에 의지해 온 우리 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주요 수출국인 중국과 미국의 경제사정이 어둡다 보니 수출 길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양극화는 외환위기의 산물
세계적 경제위기가 이제 시작 단계라는 소식은 답답한 가슴을 더 짓누른다. 주요 세계경제기구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전망을 잇따라 하향 수정하고 있다. 국내 주요 경제연구소들도 계속 경제전망을 낮춰 잡고 있다. 최근에는 1% 성장 전망과 함께 마이너스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위기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에는 모두 동감하면서도, 그 추락의 끝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졌으며,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국이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잘 돌파했다. 그러나 성공적인 극복 뒤에는 심각한 후유증이 있었다. 바로 양극화의 심화다. 그 중에서 기업 간의 양극화 심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수출과 대기업 부문은 호황을 누린 반면 내수와 중소기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문제는 이러한 양극화 구조가 경제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성장 동력이었던 수출이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따라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내수 부문인데, 기업 간 양극화 구조에서 내수가 그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게다가 외환위기 때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난 가계부채는 결국 소비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경제위기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침체는 곧바로 고용위기로 번지고 있다. 이미 2008년 11월 신규 취업자수가 8만명 수준에 그친 데다, 새해 고용전망은 더 암울하다. 1% 경제성장 하에서 취업자수 증가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취업자 수가 감소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최악의 경우, 외환위기 때처럼 다시 한 번 대량 실업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고용위기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할 것이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기업은 비정규직부터 우선 해고할 것이고, 청년과 여성층의 일자리 획득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내수 부진이 심각하게 진행되면 영세자영업자와 소규모 사업장의 근로자들부터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취약 계층의 상당수는 일자리를 못 얻고 실직자 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경제와 고용위기 타개를 위해 적극적인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이 추진하는 극단적 대책에 비하면 다소 미약해 보이지만, 한 해 동안 5조원 이상을 투입해 170만 명 이상에게 혜택을 준다는 계획이다. 고용위기의 최대 희생자는 취약계층이 될 것이라는 인식 속에 이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도 펼칠 것이다.
단기와 중ㆍ장기 대책 병행을
명심해야 할 것은 단기적 처방과 중ㆍ장기적 정책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단기적 처방으로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가고, 중ㆍ장기적 정책을 통해 앞으로 올지 모르는 또 다른 위기를 미리 막기 위한 차원에서다. 심각한 양극화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단기 처방에 치중한 나머지, 중ㆍ장기적 대책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눈 앞의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불로 번질 수 있는 조그만 불씨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시균 한국고용정보원 고용조사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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