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에는 석탄박물관이 있다. 아버지가 20년 동안 주야로 탄을 캐던 산은 아름답지만, 개미굴처럼 뒤엉킨 폐광들을 켜켜이 품고 있다. 박물관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관람객에게 갱차를 타고 갱도로 추락하는 듯한 절실함을 느껴보라고. 아버지는 탄 깨는 인형들을 보고, 깊은 갱도에서 탄인지 밥인지 분간도 못하며 벤또(도시락) 먹던 그때를 회상했다.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나는 어쩐지 울컥했었다.
탄광촌 군상들의 희로애락을 시에 담겠다고 굳게 맹세했던 탄광촌 친구가 떠올랐다. 박물관에 현대적으로 정리 된 60여 년 탄광의 역사는 아버지의 시커먼 청춘까지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1989년 석탄합리화방안으로 일제히 사라진 탄광들은 저 산 속 어딘가에 냉풍욕장으로 개발될 날을 기다리며 똬리 틀고 있는데, 탄광과 함께 했던 광부들과 처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진폐증으로 스러져간 아버지의 동료들은 편히 잠들어 있는가. 저 산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석탄이 쌓여 있다.
우리 아버지들이 깼으나 소비되지 못하고 그저 높다랗게 시커멓게 쌓여 있다. 석탄의 시대도 가고 아버지들의 시대도 갔지만, 석탄이 아버지가 우리를 키워냈다는 사실은 저 박물관처럼 명징하다. 석탄박물관에 가면 아버지들의 냄새가 뜨겁다.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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