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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위기에 빛난다/ 최태원 SK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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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위기에 빛난다/ 최태원 SK 회장

입력
2009.01.08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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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주회사로 제3창업… 이번엔 자원개발로 정면 돌파"

"위기일수록 돌아가지 마라. 정면으로 부딪쳐라."

최태원 SK 회장은 위기 때마다 늘 '정공법'을 강조한다. "편법을 쓰면 순간은 피해갈 수 있지만, 결국 더 큰 위기로 되돌아온다"는 것이 최 회장의 지론이다. 그래서 과거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받자 과감히 지주 회사로 전환했고, 고유가 시대를 맞아 정유 사업이 고전할 것이라는 안팎의 지적에 대해 자원개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모두 정공법 경영 이론의 발상이다.

최 회장이 구상하는 신년 위기 극복의 키워드는 바로 정공법에 입각한 '자원개발' 카드다. 현재 국제유가는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에너지가 미래 성장의 핵심 무기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공법' 경영으로 위기 극복

최 회장이 취임 이후 맞은 가장 극적인 변화는 바로 50년간 이어온 그룹의 지배구조를 바꾼 것이다. 그는 2007년 7월 SK그룹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제3의 창업을 선언했다. SK그룹이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로 돼 있고 경영권이 소수에 집중됐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지주회사'라는 선진형 지배구조를 택한 것이다.

지주회사 전환은 최 회장식 '정공법'의 시작이었다. 그는 지주회사 전환 직후 임직원들에게 "지주회사 전환은 시작이지 완성일 수 없다"면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더 큰 행복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이 나눌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실제 지주회사 전환은 SK그룹에게 약이 됐다. 2007년 그룹사 전체 매출은 82조6,000억원으로, 전년 70조 5,000억원에 비해 17%나 성장했다. 올해 매출도 90조원에 육박, 지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최 회장의 정공법은 에너지 위기 때도 효력을 발휘했다.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에너지는 그룹 전체 매출의 30%를 올리고 있지만, 2005년 하반기부터 원유 가격이 50달러를 넘어서면서 위기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고유가 탓에 정제 사업의 매출 원가는 올라갔고 정유 공장 운영비도 치솟았다. 그 바람에 SK에너지의 정제 사업 영업이익률은 2004년 6.1%에서 최근 1.9%까지 곤두박질쳤다.

이 정도면 몸을 잔뜩 움츠릴 만도 하건만, 최 회장은 오히려 자체 유전 확보라는 에너지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유가가 많이 올라 시기적으로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는 것이 최 회장의 생각이었다.

그 결과 석유개발 사업은 최근 SK에너지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석유개발 사업 매출은 2004년 2,000억원대에서 2005년 3,354억원으로 뛰었고, 2007년에도 3,232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연평균 3,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석유개발 사업의 영업이익은 매년 2,000억원에 이른다. 매출 3,000억원 가운데 2,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영업이익의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된 것이다.

미래 먹거리의 핵심은 자원개발

최 회장 신년 구상의 핵심은 자원 그룹으로의 변신이다. 현재 유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자원이 무기가 되는 에너지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비단 원유 뿐만이 아니다. 유연탄, 아연, 인광석 등 각종 광물도 이제는 무기가 되고 있다. 따라서 최 회장은 자원 확보를 위해 SK에너지, SK네트웍스, SK가스 등을 앞세워 그룹 차원의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SK그룹은 올해 1조원 이상을 자원개발에 투자했다. 2007년 투자비 4,900억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2009년에도 자원개발 투자비를 단계적으로 늘릴 방침이다. 특히 원유의 경우 영국 브라질 리비아 페루 등 17개국 32개 광구에서 5억1,000만배럴을 확보한데 이어, 2015년까지 8조5,000억원을 투자해 확보 물량을 10억배럴로 늘릴 계획이다. 이는 국민 전체가 50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자원개발은 광구 탐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SK에너지를 통해 석유화학 트레이딩 시장에서 글로벌 대형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자원 확보와 석유제품 유통 모두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SK에너지는 2007년 싱가포르법인을 중국 이외 아시아 지역의 사업을 총괄하는 'SK에너지 인터내셔널(SKEI)'로 전환했다. SKEI는 석유 및 화학 유통을 위한 독자사업 개발 및 투자, 파이낸싱 기능을 갖추고 중국 이외 아시아 지역 진출의 전초 기지가 될 전망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SKEI의 주무대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은 광물자원 개발을 위해 SK네트웍스도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2014년까지 30조원 가량의 자원을 확보, SK네트웍스가 세계 자원시장에서 50위권 기업이 되도록 육성할 방침이다.

이미 SK네트웍스는 2006년부터 발 빠르게 움직여 중국에서 동 150만톤과 유연탄 2,500만톤, 인광석 550만톤을 확보했으며, 카자흐스탄에서 아연 158만톤, 호주에서 유연탄 3억톤, 인도네시아에서 유연탄 1억8,000만톤을 확보했다.

SK네트웍스는 2009년부터 30여개의 광물자원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장 및 글로벌 사업 경험을 지닌 12명의 비석유 자원개발 전문가를 확보, 이 분야 국내 최대 규모의 전문 인력을 자랑한다.

국내 액화석유가스(LPG)의 안정 공급을 주 사업으로 하는 SK가스도 해외 석유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미 러시아 캄차카 지역의 육상광구를 탐사 중이며, 올해 미국 멕시코만 해상 광구와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가스전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 회장은 SK가스를 통해 현재 원유를 생산 중인 유전의 지분 매입도 검토하고 있다.

■ 崔회장 각 계열사에 '시나리오 플래닝' 제시

"폭풍우 속에서도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 플래닝 체제를 갖춰라."

최태원 SK 회장은 2009년 경영 화두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각 계열사에 제시했다.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여러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감안, 각 상황에 맞는 시나리오들을 설정해 놓고 해당 상황이 닥쳤을 때 즉각 대응하는 방법이다.

최 회장이 2009년 경영 화두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제시한 이유는 "앞으로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져 실물 경제는 물론 경영 환경이 악화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올해의 경영 환경이 불확실한 만큼,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위기 관리를 철저히 하자는 복안이다. 그는 "지금처럼 대내외 변화가 빠를 때에는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는 방식의 경영보다, 그때그때 상황별 대응 전략을 짜놓고 상황에 맞는 시나리오 경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시나리오 플래닝은 2007년 11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됐을 때 한 차례 시험대를 거쳤다. 당시 SK경영경제연구소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의 신용 경색을 확대하고 자산 가격을 급격히 떨어뜨려 한국 등 전 세계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SK경영경제연구소는 2007년 11월 한 달 동안에만 '부채담보부 채권(CDO) 현황과 세계 금융위기', '미국발 금융위기 가능성 점검', '미국발 금융위기 가능성 및 시사점' 등 3건의 보고서를 내놓고 각 단계별 대응 방안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최 회장은 이를 토대로 각 계열사에 시나리오 플래닝에 따른 환 리스크 방안을 주문했다.

그 결과 SK에너지는 매출채권 조기 결제, 장기 차입금에 대한 환 헤지를 통해 올해 3분기 환차손을 4,000억원으로 줄였다. 그룹 관계자는 "만약 SK에너지가 시나리오 플래닝에 따른 환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았다면 환차손은 5,000억원으로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내년에도 시나리오 플래닝에 맞춰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할 방침이다. 특히 최 회장은 위기 이후 찾아올 기회를 잡기 위해 속도와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경영계획 수립을 요구했다. 그는 "세계화와 신성장동력 창출이라는 그룹의 지상과제를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최고경영자(CEO)들이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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