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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희망 찾는 사람들] <1> 팝페라 가수 꿈 시각장애 윤선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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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희망 찾는 사람들] <1> 팝페라 가수 꿈 시각장애 윤선혜양

입력
2009.01.08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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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흘린 눈물을 난 알지 못했죠. 날 지금까지 웃게 했던 그 모습으로 애써 아픔을 감추던 그대…" 하얀 드레스에 분홍 관을 쓴 공주가 눈을 감고 맑은 노래를 길게 뽑아낸다. 청아한 목소리에는 듣는 이의 가슴을 가만히 흔드는 깊은 울림이 담겨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오후 인천 부평구 십정동의 인천혜광학교(시각장애 특수학교) 대강당. 200여 객석을 채운 관객들이 뮤지컬을 숨죽여 '듣고' 있었다. 2008년 특별활동 발표회 무대에 올린 연극부의 뮤지컬 공연 '백설공주를 사랑한 일곱번째 난장이'였다. 앞을 볼 수 없지만 수 백 번 연습한 덕분에 배우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흘렀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는 백설공주로 분한 윤선혜(12)양.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대사는 가슴을 파고 들었고, 부드러운 노랫소리는 온 몸을 울렸다.

예술의전당 등 뮤지컬 무대에 서 온 윤양의 노래는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를 감동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아 다른 장애우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된 윤양은 '희망이 언젠가는'이라는 노래를 불러 김 여사를 비롯한 많이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김 여사는 노래에 대한 보답으로, "얼굴이 보고 싶다"는 윤양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볼 수 있게 해줬다.

윤양은 2004년 첫 무대에 섰다. 그 해 7월 우연히 알게 된 크리스마스 시즌 뮤지컬 오디션에 1등으로 접수해 1등으로 뽑혔다. 어릴 때부터 워낙 노래를 좋아해 들리는 노래는 죄다 외워 불렀지만, 정식 오디션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윤양은 떨지 않았다. 어머니 이지숙(36)씨는 "오히려 제가 너무 떨려서 선혜의 손을 끌어 오디션 장에 세워두고 도망치듯 나와서 기도만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딸에게 미안한 게 많다. 거의 100일이 다 될 때까지 딸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움직임이 다른 아기들보다 느리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병원에 데려갔는데 '시신경 발달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진 듯 했다. 당시 월세 10만원짜리 단칸방에 살며 끼니를 걱정할 형편이어서 변변한 치료 한 번 받지 못했다.

그래도 윤양은 착하고 예쁘게 자랐다. "동생 찬영(4)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내용을 다 외웠어요. 같이 놀아주려고요." 이렇듯 윤양은 눈의 장애를 암기로 극복해왔다. 부모님이 틈틈이 돈 모아 몇 개월에 한 번씩 보내주는 피아노 학원에서도 악보를 모조리 외워 쳤다. 하지만 다양한 곡을 연주하려면 악보 읽기는 필수. 점자 악보 읽기를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 이번 겨울방학 목표다.

윤양이 팝페라 가수의 꿈을 이루려면 전문적인 음악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100만원이 채 못 되는 아버지 월급으로는 네 식구 생활하기도 빠듯해 엄두를 내지 못한다. 2006년까지는 오디션 본 뮤지컬 공연을 통해 배움의 갈증을 조금씩 풀었지만, 열 살이 되자 맡은 배역보다 커 버려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 혜광학교 연극부 정임순(40) 교사는 "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몸의 장애가 삶의 장애가 되지 않게 사회가 많이 뒷받침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윤양은 항상 씩씩하다. "전 파란 하늘을 본 적이 없지만 제 노래로 파란 하늘 같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어디서든 노래하고 싶어요." 윤양의 2009년 희망 일기에는 바람과 다짐이 가득하다. 점자로 된 악보를 손쉽게 구해 노래연습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기를 가장 소원한다. 피아노 연습도, 노래 연습도 더 열심히 하겠단다. 작곡에도 도전해 직접 시를 짓고 곡을 붙여볼 생각이다. 엄마와 함께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모처럼의 여행에 어머니 이씨도 설렌다. "기차 타고 바다에 가서 모래사장도 걸어보고…, 그동안 못했던 것들 경험하게 해주려고요. 눈으로 볼 수 없는 선혜가 차근차근 더듬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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