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지식, 철학의 법정에 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지식, 철학의 법정에 서다'

입력
2009.01.08 04:48
0 0

/마이클 필립스 지음·홍선영 옮김/갤리온 발행·360쪽·1만4,000원

미국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은 특정한 인물 성격을 제시한 뒤 그 사람의 직업이 변호사일지 기계공일지 맞혀보라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첫번째 실험집단에게는 그 인물이 변호사 70명, 기계공 30명 중 선택(즉 변호사일 확률이 70%)된 사람이라고 알렸고 두번째 실험집단에게는 변호사 30명, 기계공 70명 중 선택(즉 변호사일 확률이 30%)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집단의 판단은 같았다. 이 실험결과는 사람들이 통계수치보다 직업적 특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이 오류를 감수하면서 손쉽고 직관적으로 가능성을 추정하는 사고습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심리학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지식, 철학의 법정에 서다> 는 인간의 믿음과 지식에 얼마나 오류가 빈번한지, 학자 의사 언론 등 지식인층은 어떤 속임수를 저지르는지 등을 보여주며, 철학 본연의 임무로서 지켜야 할 믿음과 버려야 할 믿음을 가려내는 방법을 제안한다.

지식의 오류는 교육 수준이 낮은 예외적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우수한 두뇌집단도 마찬가지다. 1986년 1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발사 전날 부품생산업체 엔지니어들은 로켓 이음부의 부실로 인한 폭발 가능성을 경고하며 발사 연기를 주장했다. 하지만 "엔지니어가 경영자 자리를 넘보는 것 아니냐"는 경영진의 '결단'에 의해 발사는 강행됐고, 예고된 참사가 빚어졌다.

물론 사람의 뇌는 컴퓨터와 다를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 신속한 판단을 내리도록 적응한 뇌는 방대한 지각정보를 처리하느라 시간을 소모하는 대신 필요한 정보만 선별하며, 정보를 적극 수정하고, 직관적으로 판단을 내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재의 정보나 기분에 따라 과거의 기억이 바뀌고, 첫인상에 따라 믿음이 좌우되거나, 믿음을 확증하는 증거만을 찾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오류가 챌린저호 폭발처럼 간혹 치명적이라는 점. 변호사ㆍ기계공의 확률을 무시하는 이들처럼 의사들도 유방암 X선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여성이 실제 유방암일 확률(기저율)을 무시, 불필요한 절제 수술을 양산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주류 철학을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하고 앉아있을 의심을 증명해야겠다는 망상적 시도"라고 보는 저자는 데카르트의 진정한 목적(가치있는 믿음과 그렇지 않은 믿음을 구분 지을 인식도구)을 향해 "검증하는 삶을 살라"고 제안한다. 결론을 이끌어낸 논증과 증거가 합당한지, 주장을 하는 이들의 공정성이나 능력이 의심스러운 것은 아닌지, 상식이나 개인적인 경험과 충돌하는지 등을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

물론 모든 사실에 완벽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와 타인의 삶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믿음일수록 높은 증거수준을 요구해야 한다. 간혹 소크라테스처럼 지식을 가장한 권력과 무지에 저항하는 일은 위험하지만 그래서 영웅이 되기도 한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