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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0> 재일동포들의 차별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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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0> 재일동포들의 차별대우

입력
2009.01.08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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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초의 일이다.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초청장이 미 의회에 전달됐다. 놀랍게도 나를 꼭 포함시켜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일본은 미 의원들이 선호하는 방문지이다. 그런데 마침 같은 기간에 유럽 초청 여행이 있어 많은 의원들이 유럽을 택하는 바람에 결국 나 혼자 일본으로 떠나게 됐다. 나와 마찬가지로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보좌관 한 명이 수행했다.

30년 만의 도쿄행은 나를 매우 들뜨게 했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니 일본 외무성 관계자 몇 명이 마중나왔고, 교포들도 나왔는데 예쁜 아가씨가 꽃다발을 안겨주기도 했다. 미국대사관에서도 나왔다.

일단 미 대사관에 들렀다가 일본 외무성의 안내로 뉴오타니 호텔에 투숙했다. 내게 배정된 방은 무척 넓고 사치스럽기가 짝이 없었다. 일본 천황이 살던 궁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왼쪽으로는 아카사카라는 한인타운이 보였다.

그 날 저녁은 일본 내 미국 기업인들과 만찬을 했다. 미 의원들이 외국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제일 먼저 대사관 차로 미 대사관에 들러 직원들의 브리핑을 자세히 듣는다. 그 다음 저녁 만찬을 그 곳에 주재하는 미국 기업인들과 함께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받고, 이들이 현지 기업들과의 사업상 애로점, 불공정 사례들을 설명하면 함께 간 보좌관과 대사관 직원이 이 얘기를 자세히 받아 적고 정리한다.

그리고는 방문국 정부 고위 인사들과의 면담에서 이런 문제들을 조목조목 의논하며 대책을 약속 받는다. 어떻게 보면 미국 의원들의 외국 방문은 그 곳에 나가 있는 미국 기업인들을 돕는데 목적이 있고, 현지의 대사관 또한 미국 기업인들과 그 가족들을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렇게 의회와 정부가 힘을 합해 해외의 미국 기업들을 열심히 도우니 미국 기업들이 세계 곳곳에 뻗어 나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본 총리와의 면담까지는 일정이 하루가 비었다. 도착한 날 저녁 기업인 만찬에 참석하기 전에 호텔에서 잠깐 쉬는 동안 재일교포 몇 분이 호텔 로비에서 나를 만나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내려가니 민단 회장과 총무, 이사 몇 분이 오셨다. 총무는 저 유명한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씨의 아들이었다.

다음 날 하루가 비니 그 날을 자기들과 보낼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서 한마디로 승낙을 하고 그 자리에서 일본 외무성에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했다. 다음 날 조찬 모임은 피할 수가 없지만 저녁은 다음 날로 미룰 테니 원한다면 재일 교포들과 이틀을 보낼 수도 있게 일정을 조정했다는 외무성 배려에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이튿날 도쿄 중심가의 민단 사무실에 갔다. 꽤 큰 6층짜리 빌딩이 민단 소유이고, 입주자들도 주로 교포들과 관계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강당도 하나 있었다. 미국에서 본 한인회 빌딩의 초라함과는 비교가 안됐다. 그 날 저녁은 아카사카 한인타운에 갔다. 동네가 깨끗하고 간판만 한글로 쓴 것 외에는 중심부의 일본 타운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미국 내 한인타운들은 대개가 싼 동네,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는 동네에서 식당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이후 짧은 시간 안에 발전하면서 부동산 값이 하늘로 치솟는 게 일반적이다. 가령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가의 한인타운은 원래 흑인동네에 인접해 있는데다 멕시코 불법이민자들도 많아 살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이 곳을 한인들이 부흥시켜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고 동네가 깨끗하게 바뀌면서 부동산 값이 치솟았다.

워싱턴 부근의 애넌데일이란 동네 역시 남미 불법이민자들이 득실거리는 초라한 동네였지만 하나 둘씩 모여든 한인 상인들이 지금은 아름다운 한인타운으로 바꾸어 놓았다. 도쿄는 달랐다. 한인타운이 가난한 동네에 자리잡은 게 아니라 도쿄 어디에 갖다 놓아도 빠지지 않을 동네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한국 불고기 집에서 하던 중 옆 방이 너무 시끄러워 그 방의 일본 손님들을 향해 좀 조용히 하라고 한국말로, 또 일본말로 반복을 하니까 금방 조용해 졌다. 하도 신기해서 물어보니 여긴 한인타운이라 일본인들이 공손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인들도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만찬에서 자세히 들어보니 재일교포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대단하다고 했다. 그래서 많은 교포들이 일본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일본 이름이 아닌 한국식 김씨, 박씨, 이씨로는 심지어 은행 융자를 받기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일본은 노골적이 아닌 교묘한 방법으로 차별대우를 한다는 얘기다. 공무원이 되고 싶어도 일본 이름이 아니면 인터뷰 조차 거절 당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이튿날 일본 총리를 만났다. 통역관을 가운데 두고 하시모토 총리와 비서실장이 같이 앉았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한인교포들에 대한 조직적인 인종차별을 얘기했다. 일본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일본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니 이는 조상에 대한 모욕이요, 자기 모국에 대한 배신이 아니냐고 했다.

미국 의회내 일본 이름을 가진 의원 2명 가운데 한 분은 노먼 미네타(Norman Mineta)이고 또 다른 한 분은 밥 마쯔이(Bob Matsui)로 둘 다 일본 이름을 갖고 당선됐고 나도 김씨라는 이름을 갖고 당선이 됐는데 일본에선 김씨, 박씨의 이름으론 은행에서 대출도 안 해 준다니 이는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할만한 처사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하시모토 총리는 그럴 리가 없다면서 곧 내무상을 호출했다.

내무상 역시 전형적인 일본인 타입이다. 그는 일본에서 인종차별은 엄연히 불법이며 만일 차별 대우가 있을 경우 자기에게 직접 연락해 달라고 명함까지 몇 장 건넸다. 1980년도 초에 반인종차별법이 통과되었다며 법안도 내게 주었다.

나는 할 말을 잊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화제를 급히 다른 데로 돌렸다. 하시모토 총리 면담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재일교포 여럿이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총리 면담 결과가 궁금했던 것 같았다. 나는 약간 격앙된 어조로 이미 반인종차별법이 있다며 이를 어길 경우엔 자기에게 직접 연락해 달라던 내무상의 말을 전하면서 그의 명함도 건네 주었다.

왜 이런 법이 이미 존재한다고 내게 진작 말을 안했느냐고 불평을 토했다. 그런데 대답은 너무도 놀라웠다. '법은 있지만 법을 어긴 자에 대한 처벌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그런 법은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닌가. 법을 어겨도 처벌할 규정이 없다면 이 건 법도 아니다. 나는 당장 내무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자리에 없었다. 어차피 다음날 만찬 때 만날 테니 그 때 묻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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