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지구촌의 키워드는 '경제난 극복'이다. 지난해 전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가 실물로 본격 번지면서 세계적인 기업들조차 생존 자체가 올해 최대의 화두가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어려움이 가시화하고 있고, 업종 기업 구분없이 '하루하루 버티기'에 전전긍긍하는 정도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리더십'.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뚜렷한 비전을 추진력 있게 끌어갈 지도자가 필수 요소인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듯 기업의 흥망도 바로 위기 때 도드라진다. 우리 경제사를 돌아봐도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은 기업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갈랐다.
위기에 더욱 빛나는 리더십. 그 어느 때보다 더한 어려움에 처한 올 한해, 우리 경제계에 각 부문 CEO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는 이유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위기를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바꾼 것은 삼성과 현대ㆍ기아차, LG, SK 등 주요 그룹에 CEO들의 빛나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의 CEO 역할은 사실 경영환경의 시대적 조류에 따라 변화해왔다. 1960년대에 창업가형 리더십이 돋보였다면, 70~80년대는 사업확장형, 80년~90년대는 관리형, 98~2008년은 구조조정형 리더십이 있었다.
올해는 크게 높아진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보수화한 경영체질을 탈피하기 위한 창조형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다. 창조형 리더십은 위기 속에서의 생존전략은 물론이고, 불황 이후를 대비해 부단한 성장기회를 모색하고 창조적 파괴활동을 수반할 때 가능하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98년 신년사에서 "내 탓이요"를 강조했다. 남 탓하기에 바빴던 세상 사람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연은 더 높이 난다"며 '연 경영론'을 주창하기도 했다. 앞서 이 전회장은 93년 삼성전자의 불량률 등을 질타하며 '신 경영'을 선언했다. 여기서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명언이 나왔다. 이후 삼성은 뼈를 깎는 경영혁신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체질을 갖췄다.
카리스마에 바탕을 둔 리더십 스타일은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여전한 논란거리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정 회장은 그룹 출범 후 줄곧 '품질경영'을 강조했다. 어떤 악재들이 겹쳐도 그 근간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품질경영이 기둥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정 회장은 '품질 좋은 차는 고객이 외면하지 않는다'는 뚝심 경영철학을 유지했다. 악재들을 빠르게 걷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인 셈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든 반전의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있다. 구 회장은 외환위기 속에서 네덜란드 필립스, 영국의 BT, 일본의 니코금속 등 해외 유수기업들과 잇단 전략적 제휴와 적극적인 구조조정으로 초우량 LG의 기반을 닦았다.
SK그룹은 2003년 SK글로벌 사태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최태원 회장은 '자기(自己)희생'의 결단을 통해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고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체제를 정착시키는 등 기업 구조개혁을 통해 그룹을 환골탈태시켰다.
CEO의 위기대응 리더십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힘과 열정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리더의 자기 희생과 결단, 그리고 도전을 보면서 스스로 결전의 의지를 다지고 주인의식을 유지해 나간다. 롯데 한화 포스코 GS 금호 한진 등 굴지 그룹이나 국민 우리 하나은행 등 대표 은행들의 CEO 역시 그 동안 어려움을 이겨내온 과정을 통해 이 같은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거센 한파에 발가벗겨진 우리 경제계는 올 한해 위기에 대응하는 CEO들의 창조적인 리더십을 주목하고 있다.
장학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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