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오후6시 한 청년이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왔다. 자신을 '20대 백수'라고 밝힌 이 청년은 31만4,150원이 든 봉투와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이내 사라졌다.
그가 1년 동안 읽은 책 가격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기부자의 이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기드 모파상,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무라카미 하루키, 이외수, 은희경, 성석제 등 국내ㆍ외 작가 49명.
청년은 편지에서 "도서관에서 읽은 책을 통해 어두운 천체에서 반짝하고 사라지는 유성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내가 받은 혜택을 돌려 드리고 싶어 작가분들의 이름으로 기부한다"고 말했다.
한 해를 마감하는 31일에도 나눔의 온정은 그치지 않았다. 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익명의 기부자들은 각자의 사연이 깃든 기부금을 건네며 뜻깊은 세밑을 보냈다.
한 40대 남성은 이날 오후 모금회 사무실에 들러 1만원 지폐 100장 한 묶음(100만원)을 두고 갔다. 매년 12월31일마다 기부금을 전달한다는 그는 "나와의 약속을 지킨 것 뿐"이라며 자리를 떴다. 또 다른 남성은 "갖고 있으면 그냥 써버릴 것 같다"며 회사에서 받은 포상금인 20만원 어치의 문화상품권을 내밀었다.
한 보험회사 직원 5명은 1년 동안 일하며 지각이나 흡연 등 벌금으로 모은 50여만원을 기부했다. 대표로 온 직원은 "비록 벌금이기는 하지만 기부금 영수증으로 바꿔가니 기분이 좋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 외에도 매년 12월31일마다 현금 100만원씩을 기부하는 초등학교 선생님, 경제 사정이 어려워 한 해 기부를 걸렀다는 60대 남성의 선행도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공동모금회는 한 해를 나눔으로 마무리한 익명의 기부자들을 '희망2009 나눔캠페인-62일의 나눔 릴레이' 34호 행복나누미로 선정했다.
한편 강원 강릉시에서는 2일 80세의 김옥환(80ㆍ강릉시 노암동) 할머니가 시청을 방문, 허드렛일 등으로 어렵게 모은 1,000만원을 불우이웃에 써달라라며 최명희 시장에게 전달했다.
김 할머니는 17세에 강원 횡계로 출가했으나 한국전쟁 와중에 부모, 남편과 사별하는 고통 속에서도 직접 낳은 6남매(2남4녀) 이외에 이웃의 고아가 된 3남매 등 모두 9명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9남매 가운데 8명을 출가시키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41)과 살고 있는 김 할머니는 "두부 장사와 농장 허드렛일 등으로 어렵게 모은 돈이지만,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릉=곽영승 기자 yskwak@hk.co.kr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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