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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신춘문예/ 희곡 -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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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신춘문예/ 희곡 -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

입력
2009.01.08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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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 : 주정훈

등장인물

서씨(徐氏) - 여, 54세

서씨 역의 배우 - 여, 28세

그 - 소리만

무대

무대 세트는 없다. 무대 중앙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이다. 나무에는 무복(巫服) 한 벌이 걸려있다. 그 주변은 약간 높이의 작은 단. 바닥은 황토 빛이 좋다. 황토 빛 바닥은 거미줄처럼, 혹은 나무의 뿌리처럼, 삼면의 벽으로 뻗어나가 있다. 이는 한 개인의 생(生)에 침투하는 업장(業障)의 집요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1장. < D-­Day >

서글픈 해금소리 들리다가 잦아지면, 서서히 푸른 빛 조명이 들어온다. 초봄의 추위가 녹녹치 않은 새벽이다. 무대 한 쪽에서 서씨 역을 맡은 배우가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분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다. 서씨 역의 배우는 덤덤한 듯, 또는 회한에 젖은 듯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서씨 (담배를 피다 말고 객석의 한 남자 관객을 향해) 담배 피는 거 첨 바? 왜, 절믄 년이 담배 꼬나물고 있는 거이 꼬아? (재밌다는 듯 웃어재낀다.) 너무 그러지 말어. 나는 지금 배우 ○○○이로 여기 있는 게 아니라 54세 서씨로 있는 겨. ‘거주지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3동, 전화번호 010-xxxx-xxxx, 직업 연극배우, 이름 ○○○!’ 이 아니라 ‘56년 전북 남원 출생!’ 으 서씨로 안자 있는 겨. 긍게 절믄 총객이 너그럽게 이해혀. (객석의 다른 남자 관객을 향해) 아따, 저 총각 그 새 내 번호 따고 안잔네. 공연 중엔 핸드폰 끄래니께 하여간 말도 드럽게 안 들어 처먹어. 태어나서 연극 첨 보지?!

촌놈. (웃음, 사이) 사실, 나도 태어나서 이놈을 첨이로 물어보는 겨. 맴이 영 수상혀서 여기 일하는 공양주 아짐한티서 한 놈 얻어 피우고 있는 겨. 여기가 어디냐고? 기양 쩌어 우이동 어디 굿당 이라 해두자고. 먼 볼일이냐고? (사이) 열 두 대신께서 불러서 왔제, 어디 오고 자퍼서 왔겄는가.

그러케 안 온다고 했는디, 결국은 날 여기 데레다 놓는구먼.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예, 알겄어요! (다시 앞을 본다.) 누구냐고? 엄니. 나아준 엄니 말고 신(神) 엄니. 대충 알겠제? 인자 가바야 하는디……. (사이) 내가 개기 전에 춤 한번 출라는디. 그람 맴이 쪼까 편해질 것도 같은디. 어디 해볼까나? 말까나? (사이) 그려. 그럼 잘 들 보쑈잉.

아프리카 토속 음악에 맞춰 서씨 역의 배우가 아프리카 타악기인 까종, 젬배등을 직접 두들기며 탭댄스를 곁들인 흥겨운 춤을 춘다.

2장. < 지집년 >

서씨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뗘? 볼 만 했는가? 내가 국민핵교 ?X이 못나왔어도 어렸을 직부터 춤허고 노래는 끝내 줬당께, 공부도 잘 혔고. 실력으론 나가 멋이등 1등이었는디, 핵교선 부회장 ?X이 안 시켜 주대, 여자라고. 잘난 것 없는 박가네 둘째 손자 놈이 회장 해 불고. 코찔찔이 박병태, 맨나 나한티 얻어터졌는디. 그 집이 우리 동리서 전답이 젤로 많았응께. 돈이 웬수고 여자로 태어난 게 죄여. 핵교 갔다 옴, 남동생 둘은 공부방서 책보고, 내는 산에 가서 낭구 해오고, 소여물 맥이고, 밭 갈고, 밥 짓고, 빨래 허고. 울 압씨가 위암이었당께. 엄니는 왼죙일 압씨 병수발 허고, 집안일은 죄다 내 몫이고. 심들어서 냇가서 혼자 울기도 만이 울었는디. (사이) 압씨 약값 헌다고 그나마 있는 전답 다 내다 팔고 날마다 끼니걱정 혔어도, 울 엄니 그 독한 양반, 아들 냄이 둘 한티는 절대로 일 안 시켰어. 딸이라고 내만 부려먹고. 다른 건 다 챔을 수 있었는디, 중핵교 안 보내 줄땐 참맬로 안 살고 ?促罐?

조명이 바뀌고 음악이 흐르면서 시공(時空)은 서씨의 열세 살,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씨 역의 배우는 무대 나무 주변의 단 뒤쪽에서 단발머리 가발을 꺼내서 눌러쓴다.

서씨 엄니, 내 농사일 못헤겠어라. (사이) 농사일 못헤겠당께요. (사이) 그램 내가 안 미치게 생겼쏘? 코찔찔이 병태도 가는 중핵교를 왜 내는 못가게 하씨요? (사이) 지집년은 중핵교 못가라는 나라벱이라도 있쏘? (사이) 암튼 중핵교 안보내줌, 내 콱 세 깨물고 디져불랑께. (사이) 아, 엄니! 엄니!!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서씨 역의 배우 가발을 벗어놓는다.

서씨 결국 내가 졌어. 이레 밤낮을 울고불고 때를 써도, 울 엄니 눈 한나 깜짹 안 허데, 독헌 양반……. 그 때 결심, 또 결심을 했어. 나중이 시집가 딸 나음 손이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키워 대핵까정 꼭 보낸다고. 우리 딸 냄이 둘이 들음 웃을 소리지만.

이 때, 어디선가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서씨 역의 배우 (버럭 화를 내며) 뉘기여?! 아까 내 번호 따든 그 놈이제?! 연극 시작 허면 전화길 꺼야 할 꺼 아녀! (벨 소리 계속 울린다. 서씨 역의 배우, 잠깐 우물쭈물 거리더니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크게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진다. 객석과 핸드폰을 번갈아 보며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는다. 속삭이는 소리로) 엄마. (사이) 어디긴 어디야, 도서관이지. (사이) 저녁? 먹었지. (사이) 한 열시 반쯤? (사이) 집보다 도서관이 집중이 잘 되니까 그러지.

(사이) 알았어요, 빨리 들어갈께요. (사이) 네. (사이) 네. (사이) 네. 끊어요. (한숨을 내쉰다. 다시 현재의 상황을 인식하고는 관객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고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제가 정말 사정이 있어서……. 물론 이런 말씀드려도 용서가 안 되시겠지만…….

엄마 전화를 안 받으면 정말 큰 일 나거든요. 저희 엄마 학교 도서관으로 쫓아가시거든요. 보시는 대로 저는 여기 와 있구……. 정말 공연 동안만 전화 안 오길 기도했는데…….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끼니때마다 밥 먹었냐고 확인 전화 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거의 울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내 손으로 눈가를 야무지게 훑어내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서씨 역의 배우,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연기에 몰입한다.

3장. < 손수건 >

서씨 코찔찔이 병태한티 한 살 만은 성이 한나 있었는디…….

이름은 박병헌, 박가네 장손……. (꿈을 꾸는 듯) 같은 성지간이라도 어찌 그리 달랐으까잉. 키가 훤칠허니 피부도 지집애 맹이로 뽀얀 기, 이목구비 뚜렷허고. 전주(全州)서 중핵교, 고등핵교 다님성 방학 때만 고향집이 왔었는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내가 열아홉 살이었응께……, 74년이구먼.

그 해 여름에 서울서 사범대 다니다가 방학이라고 내려와 있었어. 하루는 옆 동리 잔치 집이서 오전 내 일해주고, 식구들 준다고 떡이랑 부침이랑 싸들고 집이 돌아오는 질이었는디, 때마침 그 사램도 정자서 책 보고 있었등 뫼양이여. 오전 내 불 옆서 전 부치니라고 온 몸이 땀에 젖어갖꼬, 행여 그 사램이 볼까 허둥지둥 그 앞을 지내가는디, 그 염병할 병태 놈이 읍내에 심부름 가는 질이었는지, 자전거를 앞두 안 보고 내달리는 걸 피하다가

고만 팍 짜빠져 번졌네. 그 놈은 미안허단 말 한매디 안 허구서 내빼 불고. 물팍이 깨졌는지 어쨌는지 땅바닥에 쏟아진 부침 허고 떡이 아까워, 흙 털어낸다고 입이로 후후 불고 앉았는디,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겨. 깜짹 놀래 돌아보니께 그 사램이잔여.

다시 조명이 바뀌고 음악이 흐르면서 시공(時空)은 1974년 그해 여름의 정자 앞이 된다.

서씨 (놀라서) 오빠! (사이) 두씨요, 내가 할 랑께, 손에 지름 묻는당께요. (사이) 갠찬어라, 기양 살짹 자빠, 아니 넘어진 것인디요. (사이) 물팍이라? 물팍은 머땀시……. (사이) 아, 물팍 깨진 것도 몰랐네. (어색한 웃음, 사이) 아니 여라, 집이 가서 후딱 씻으면 되여라. (사이) 비싼 손수건일 거인디 아깝게 시리……. 내가 깨끗하게 빨아서 돌리 디릴께라. (사이) 아니여라, 집이 코앞인디 자전거는 무신, 기양 걸어감 되어라. (사이) 참말로 갠찬은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서씨 그 담은 어쨌는지 생각도 잘 안 나. 자전거 뒤서 눈도 지대로 못 떴어……. 눈 떠봉께 어느 새 집 앞이고, 그 사램은 빙긋 웃곤 가불고……. 그 사램 가불이고 나서 ‘아, 우리 집이 쩌어 산 너메 멀리였음 참 좋았겠다.' 생객혔제. 엄니 몰르게 손수건을 깨끗이 빨아서 말려서 대려서 메칠 있다가 병태네 집 앞을 갔어. 마침 그 사램이 나오데. 얼릉 전해 줄라는디, 그 집 아재랑 아짐이랑 같이 따라 나오는 거여. 데비 서울로 올라가는 질 인거여, 손수건도 못 돌리 줬는디…….

쩌어 멀리 눈에 안밸 때 까정 그 사램만 지속 체다보는디, 눈에서 머가 툭 허고 떨어져. (사이) 옆 동리 그 잔치집이 읍내서 장시하는 천가(千家)네 였는디 그 집 둘째 아들이 그 날 내를 ?R등 뫼양이여. 한 보름 지나 그 집 드나드는 포목집 아짐이 우리 집이 왔다 가더니 그 날 저녁 엄니가 날 부엌이로 죄용히 불러.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서씨 엄니, 무신 일이여라? (사이) 시집이라?

시집은 무신, 내 나이가 ?V이나 됐다고. (사이) 됐어라, 압씬 저러케 몸져누웠고 태문이랑 태호는 아직 핵교도 들 마쳤는디. (사이) 천가네 둘째 아들이라? (사이) 아 됐당께라. 싫어라. 내 시집 안 갈라요. (사이) 동생들 핵비랑 압씨 약값을요? 그 집서라?

현재로 돌아온다.

서씨 그 날 밤새 울었어. 어찌나 맴이 아푸고 서럽든지.

확 셋바닥 깨물고 죽고 ?超竪?허고. 시한허데. 그 사램 생객이 왜 그러케 나등지. 깨끗이 빨아놨든 손수건이 눈물 콧물 범벡이 됐어. 그 해 가실에 보리 두 섬 받고 천가네 둘째 아들한티 내가 시집을 갔네 그려.

이 때, 서씨 역의 배우의 주머니 속에서 다시 핸드폰이 울린다. 서씨 역의 배우 참담한 표정이 된다.

서씨 역의 배우 (관객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사이, 거의 큰 절을 하듯이 몸을 숙여 인사한 후) 전화 받겠습니다. (전화를 받는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속삭이는 소리로) 엄마,

또 왜? (사이) 만났지. (사이) 어? 밥 먹고 차 마시고……. (사이) 광희네 아줌마한테 전화 왔었어? (사이) 죄송해요. 그러니까 내가 선 안 본다고 얘기했었잖아. (사이) 내 나이가 뭐가 많아? 엄마 요즘은 다들 결혼 늦게 하는 게……. (사이) 지금 못 들어가, 지금 공연, 아니 공부중이잖아. 오늘 할 건 마저 끝내고 가야지. (사이) 엄마, 알았으니까 일단 집에 들어가서 얘기해. (사이) 여기 도서관이란 말야.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뭐라 그러잖아. (사이) 알았어. 엄마 나 공부해야 하니까 전화 좀 안 하면 안 될까? (사이) 네. (사이) 네. (사이) 네. 끊어요.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은 이제 체념을 넘어 뻔뻔함으로 변해버린다. 서씨 역의 배우, 본래의 기질을 드러낸다.

서씨 역의 배우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으며) 아, 씨팔, 힘들어서 배우 짓 못해먹겠네. (품안에서 담배랑 라이터를 꺼내 담배를 피워 문다. 빡빡 빨아댄다. 관객들에게) 담배? 나 원래 골초야.

컴플레인 걸려면 걸든가, 알아서 해. 나도 이제 몰라. (확실히 해두어야 겠다는 듯) 난, 죄 없어요. 공연 끝나고 나한테 절대 뭐라 그러지 말아요.

이게 다 우리 연출 잘못이야. 내가 처음부터 안한다고, 절대 못한다고, 우리 엄마 알면 뒤진다고 그랬는데, 우리 연출이 할 수 있다고, 해야 된다고, 나 아니면 이 작품 아무도 못한다고 그러면서 꼬신 거 아냐. 그러니까 우리 연출한테 얘기해요. 우리 연출이 누구냐면요, 저기 C열 맨 뒷줄에 양복입고 나 꼴아 보고 있는 사람. 뭐 이 극장은 주위가 산이라서 휴대폰 안 터질 거라고? 잘만 터지네. 아, 우리 엄마 진짜, 전라북도 남원산 특산품.

시집? 내가 누구 땜에 하는 연애마다 줄줄이 줄 사탕인데, 알지도 못하면서……. ‘부모님은 뭐하세요?’ 묻길래 ‘네, 아버지는 맨날 술에 쩔어서 하시는 경비일도 짤리시기 일수구요, 어머니는 음…… (비꼬듯) 인생 상담 하세요, 가끔 아픈 사람 병도 고쳐주고’ 그랬지. 내가 뭐 틀린 소리 했나.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알거. 또 나만 들입다 차이겠지. 귀엽게 생긴 게 딱 내 스타일이긴 했는데. (사이, 다시 관객들에게) 요거 마저 피고 그리고 다시 시작합시다. (담배를 필터까지 쪽쪽 빨아대다가 마침내 끈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지난 일들은 다 잊으시구요. 근데 헷갈리면 안돼요. 이제부터 나 다시 54세 서씨예요, 공연 중에 전화 받던 ○○○ 아녜요. (서씨 역의 배우, 다시 연기에 몰입한다.)

4장. < 악인연(惡因緣) >

서씨 이듬 해 봄에 기어이 친정 압씨 시상 떠나고, 여름 되자마자 갑재기 시압씨도 돌아가 불고. 시압씨 돌아 가붕께, 참말로, 시아주버니 허고 손윗동서가 낯바닥을 싹 바꿔불드만. 그 새 동생들 몰르게 시압씨 앞이로 돼 있든 재산 싹 저그들 앞이로 해나불고. 동생들 핵비 도아 준다고 그 소리 듣고 시집 온 거인디……. 기양 짐 싸들고 두 내외가 서울로 올라왔네. 살기가 막막허데. 근디 그 새 또 애가 섰어. 배는 점점 불러오고 딱 굴머죽게 생긴는디 하루는 집 앞이 누가 섰어. 웬 아짐이여.

‘뉘셔라?’ 허고 묻는디 암말도 안 함성 손에 봉다리 하날 쥐어 줘. 봉께 밥이랑 떡이랑 나물이여. ‘앞이로 우리 집이 와서 부엌일이나 허드라고.

뱃 속으 애기 생각해야제. 가네.’ 멍하니 서 있는디 쥔집 아짐이 오잔여. 물었제. ‘뉘시여?’, ‘아, 만신이잔여, 이 동리 큰 만신’. 해 바끼고 음력 2월 엿새 날에 큰 딸년을 나았네. 몸 추스르고 혜영이 업고, 우리 큰 딸 이름이 혜영이여, 만신 아짐 집이서 부억일험서 밥이니 반찬이니 얻어오고, 남편은 독 깍는 공장서 쥐꼬랑지만헌 월급봉투 가지오고, 조께 살만하대. 그랬는데 그놈도 오래 못가데. 남편이 술 먹고 사고를 쳤어.

사램을 상하게 한겨, 술병을 깨갖꼬. 옥살이를 허두만, 석 달 열흘을. 이 사램이 시집 온 첨에는 기양, 술 먹음 사램이 쪼금 격해지네 이랬는디, 서울 온 담부턴 사램이 술만 먹음 완전 딴 사램이 되는 겨. 그 때부터 이 나이 먹도록 하루를 펜허게 보낸 날이 업서. 날마다 술 처먹고 행패를 부리는디…….

다시 조명이 바뀌고 음악이 흐르면서 과거의 시공(時空)으로 돌아간다. 서씨 역의 배우는 나무 뒤쪽에서 포대기와 인형을 꺼내서 들쳐 업고는 저녁밥을 짓는 시늉을 한다.

서씨 (놀라며) 깜짹이야! 인자 오셔라? (사이) 오늘도 술 만이 자셨네. (사이) 씻으셔요, 상 채릴텡께. (사이) 아, 새삼스럽게 멀 물어라, 만신 아짐 집이서 일하고 가지왔제. (사이) 그럼 어쩐 다요,먹고 살레면 무당 집이 아니라 장이사 집이선들 일 못하겄어라? (뺨을 맞는다, 사이) 상 채릴텡께 씻으셔요. (또 뺨을 맞는다) 사램을 무시하긴, 누가 무시한다고 그려라? (그렇게 계속, 기절 할 직전까지 맞는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서씨 그러구선, 그 때 보름을 밥알을 못 넹겼어.

징글징글한 인간. 전생이 무신 악연이로 만났길래. 내가 이 날 이 때 까정 聆昇?산 걸 생각험……. (사이) 아따 지분 참맬로 껄쩍찌근 허네.

이 던지러운 놈으 지분, 춤이로 안 풀면 멀로 푼 당가. 내 춤 한 번 더 출 랑께 다들 재미나게 보씨요잉.

서씨 역의 배우 신명나게 또 한 판 춤을 춰 재낀다.

서씨 (거친 숨을 몰아쉬며) 쉰 넘은 아짐이 왜 이렇게 신식 춤을 잘 추냐고? 아따, 내 ○○○이잔여, 원래. 스물 여덜살. 헷갈려? 헷갈려도 기양 넘어가! 암튼 한 판 신명나게 췄더니, 기분이 확 풀리는 게 존네.

이 때, 서씨 역의 배우의 주머니에서 또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서씨 역의 배우, 얼굴이 시뻘게지고 표정이 일그러진다. 공격적으로 휴대폰을 연다.

서씨 역의 배우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엄마, 또 왜? (사이) 누구세요? (사이,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진다.) 아, 네 소장님. (사이) 왜요? 또 저희 아빠 때문예요? (사이)

엄마는 좀 어떠세요? 어디 안 다치셨어요? (사이) 많이 찢어지셨어요? (사이) 소장님, 죄송한데, 제가 지금 바로는 못 가구요, 10시 반까지 갈게요. (사이) 네. 그러니까 엄마는 응급차 불러서 병원까지 좀 부탁드리구요, 그 인간, 아니 아빤 그냥 원칙대로 처리하세요. (전화 끊는다.

말없이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는데 몇 번을 켜도 불이 붙지 않는다. 담배랑 라이터를 집어 던진다.) 씨발……. (사이) 짐승 같은 새끼. (허공의 한 지점을 노려보며 말만 관객들에게) 이번엔 이마가 찢어졌데요, 소주병에 맞아서. (분노와 슬픔으로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맨날 엄마가 힘들게 버는 돈으로 술 처먹으면서……. 버러지 같은……. (사이) 제가 법대 나왔거든요. 우리 엄마는 내가 고시 봐서 검사되길 바라는데요, 나는 속에서 천불이 나서 의자에 앉아있질 못해요. 그래서 내가 연극을 하는 거예요. 이거라도 안하면 미칠 것 같아서……. (사이) 정말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소리까지 늘어놓고……. (다시 눈물을 닦고) 자꾸 헷갈리실까봐 다시 말씀 드릴게요. 서씨가 남편한테 당하고 산걸 생각하니까 분해서 춤으로 기분을 풀었습니다. 그 다음부터입니다. (서씨 역의 배우, 꾸벅 인사를 한 뒤, 다시 연기를 시작한다.)

서씨 암튼 한 판 신명나게 췄더니, 지분이 확 풀리는 게 좋네. 옛말 틀린 말 없다지만 이 한 가지 말은 백 프로 틀렸어. 서방 복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더라? 천만으 말씸이여. 우리 훈일 두고 말 헐라치면 그 말은 천부당만부당헌 말이여. 우리 훈이는 참맬로 귀한 꿈꾸고 난 자식이여. 내가 이건 우리 훈이 본인한티도 안 헌 얘긴디, 오늘은 특벨히 큰 맴 먹고 얘기해 줄 테니께 잘들 들어보더라고. (사이) 어느 날 꿈에 내가 처녀 몸이로 친정 집 부엌이서 저녁밥을 짓는디, 천장을 보니께 구렁이 두 마리가 세를 널름널름 거림서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겨. 내가 놀래갖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니께 한 마리는 기양 나가부는디, 나머지 한 마린 주둥팽이서 뜨건 김을 ‘쉬, 쉬’ 허고 내뱉음서 내한티 달겨드는 겨. 디졌구나, 눈깜고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어. 근디 요놈이 내 몸을 칭칭 감는가 ?醮醮?어느새 내 가랑이 새이로 스르륵 빠져 나가. 실눈을 요래 뜨고 보니께 구렁이 그 놈이 어느새 황금용이 되어갖꼬 주둥팽이에 사램 대갈통만한 여의주를 물고 하눌로 하눌로 올라가는 겨. 놀라서 확 인나봉께 꿈이여. 담날 곧바로 만신 아짐한티 갔제. 간 밤 꿈 얘기를 허니께 아짐이 빙그레 웃음성 아무리 물어도 말을 안혀. 사램을 놀리나, 기양 집이로 왔는디 워메, 그 날로 태기가 있어 불데. 꿈도 심상치 안고 혀서 조심 또 조심 열 달을 채워갖꼬 스물다섯에 얼라를 나았는디, 아따 이거이 아들 냄이여. (웃음) 이레를 누웠다가 더는 못 참겠다 싶어서 만신 아짐을 데비 챘어갔제. 아짐이 딴 말은 없고 요래 ?어가보라고 약도를 한나 그려 주는 겨. 그 놈을 보고 이우제를 ?어 간께 눈 먼 장님이 허는 철핵관이여.

다시 음악과 함께 과거의 시공(時空)으로 돌아간다.

서씨 역의 배우는 포대기랑 인형을 나무 밑에서 꺼내어 몸에 두른다.

서씨 안녕하셔라? (사이) 야. (사이) 내가 저그 답십리 만신 큰 아짐 말씸 듣고서……. (사이) 고걸 어뜨케 알았어라? 장님 아니씨요? (사이) 야. (사이) 이름이요? 고거이 아직……. (사이) 바를 정(正), 공 훈(勳), 정훈이요? (사이) 아녀라, 좋아라. (사이) 오천 원이라? 그 큰돈을 내라고라? (사이) 아니어라, 내야지라.

(사이) 구걸을 해서라도 요놈은 공부를 시기라고라? (사이) 참맬이여라? (사이) 감사 혀라, 참맬로 감사 혀라. 내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요놈은 공부 시기겠어라. (사이) 야,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도둑질은 저도 못혀라. (웃음)

현재로 돌아온다.

서씨 그 때 돈 오천 원이면 쌀 닷 말 값이여.

우선 호적에 귀한 이름 올린 다음, 금이야 옥이야 이 놈 한나 잘 키워야 것다 허는디, 웬걸, 젖이 안 나오는 겨. 동리를 죄 뒤져도 동끽엔옇?허고 핼 수 없이 쌀을 낄이 갖꼬 멀건 미음을 맨들어 그 놈을 목구녁에 떠넹기는디, 가심이 찢어져. 근디 이놈이 밥 멕여 놓고 나와서 빨래 허고 있음, 그 새 먹은 걸 죄다 토해내는 겨. 젖 안준다고 뿔이 나서 그러는가. 병원에 데꼬 갔더니, 창자가 꼬였다데. 돌도 안 된 놈 배를 갈랐네. 그 담으도 죽을 고비 여러 번 넹겼지. 큼 성 그렇게 잔병치레를 허는디, 그게 다 어릴 직 못 멕인 이 에미 탓 같어서 참맬로 맴이 아팠어.

몸은 그리 약해 빠졌어도 요놈이 머리 한나는 참 비상혀. 세 살에 지 큰 누나 핵교 책보고 혼자서 한글을 깨치는 겨, 양놈 알파벳도 지 혼자서 외어불고. 동리 할압시들 장기 두는 거 보고 그놈도 혼자 배워불드만. 초등핵교 들어가선 6핵년 졸업할 때 까정 반장, 회장 한 번을 안 놓치고, 전국 경시대회 나가서 상이란 상은 죄 타오네. 없는 살림에 먹고 살기 바쁘다고 우리 훈이 졸업식에야 핵교를 첨이로 갔어. 담임선생님이 허는 말이 아들 냄이 한나는 기똥차게 나아놨다고, 인자부터 시작인께 정성껏 잘 키우라고. 하여간 우리 훈이, 나 헌틴 참 말로 귀헌 자식이여.

6장. < 고문(拷問) >

서씨 내가 요상스럽게 우리 훈이 나코서 부턴 영 몸이 안 조아. 딱히 워디가 아푼 것도 아닌디 온 몸을 바늘로 찌르는 데끼 아푼 게, 보름 걸러 한 번씩은 아주 죽을 데끼 알아 누워. 근디 요놈으 병이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겨. 돈 없어 병원은 못가고 박카스랑 진통제를 달고 살았는디 훈이 초등핵교 졸업할 적엔 하루에 네 병 네 알을 먹었네.

그러다가 훈이 초등핵교 졸업식을 지 누나들 허고 갔다 오는 질에 내가 고만 딱 맥을 놔부렀어. 깨봉께 우리 애들이랑 만신 아짐이 머리맡에 앉아 있고.

시공(時空)은 음악과 함께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서씨 아짐 왔어라. (사이) 엊저녁에 찬밥을 먹은 게 체했는가……. (사이) 야들아, 느그들 조까 나가 있어라. (사이) 말씸 하셔라, 먼 일인지 몰라도. (사이) 그게 먼 말이여라? (사이)

시방 내보고 신(神)을 받으라 했어라? 긍께 내가 무당될 팔자라고? (웃음) 아짐 농도 잘하시네. 무당은 아무나 되간 디요? (사이) 그게 참말이여라?

(사이, 안면을 싹 바꾸며) 아짐, 어여 나가씨요, 내 집이서. 그 딴 소리 해살라면 어여 나가씨요. (사이) 채라리 내보고 디지라고 하시오.

내가 디지면 디졌지 아짐 맹이로 무당질은 안 허고 살라요. 아니 못허요. 내 새깽이들 무당년 자식이란 소리 들으라고라? (사이) 어서 나가씨요.

(사이) 아 가랑께요. 얼릉 못 가씨요? 당장 나가씨요, 내 집이서!

현재로 돌아온다.

서씨 그게 참 말이라 혀도 무당질은 절대 헐 수 없다고 생객혔제. 우리 새깽이들은 어뜨케 되라고? 무당년 자식이라고 워디 시집 장가나 지대로 가겠어? 내가 죽으면 죽었지 그 짓은 못허제, 절대 못허제. 그 질로 만신 집 발걸음을 딱 끈었어. 내가 우리 훈이 중핵교 졸업할 직에 몸무게 36 킬로에 박카스랑 진통제를 하루에 여덜 병 여덜 알을 먹었어, 매일을 알아 눕고. 주둥팽이선 내도 몰르는 말들이 튀어 나올라는걸 새깽이들 핵교 갈 때 까정 셋바닥 깨물고 참다, 핵교 가고 나면 미친 년 맹이로 사방팔방 헤매대니는겨. 그런다고 우리 새깽이들이 몰르겄어? 미친년 자식이라고 애들이 놀레 샀는데……. 그려도 내 새깽이들 한 번을 어긋난 짓 안 했어. 우리 훈이, 출세 허고 돈 벌어서 지 에미 병 낳게 해준다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응께. 기특허고 고마운 놈. 지 에미 거품 물고 지랄 혀도 눈 떠 보면 머리맡에 앉았는 건 우리 훈이 였단께…….

서씨 역의 배우, 몰입에서 빠져나온다.

서씨 역의 배우 (사이) 훈이는 참 착하다. 크면서 난 우리 집이 너무 싫었는데. 아빠란 인간은 죽도록 싫고, 엄마는 너무 너무 불쌍한데, 엄마가 너무 나 하나만 바라보고 사니까 항상 엄마 몫 까지 2인분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정말 힘들었거든. 언제나 어깨에 돌덩어리가 놓여있는 것 같았어. 가난이 지긋지긋했어. 난 양말 사서 절대 세 번 이상 안 신어. 초등학교 때, 아침에 구멍 난 양말신고 실내화 갈아 신는 게 죽을 만큼 싫었거든. 학교친구들은 이상하게 내가 꼭 부잣집 딸 인줄 알더라니깐, 내가 공부 좀 한다고. 그러다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울 엄마 보면 깜짝 놀라고. 커서도 엄마 얘기고백하면 만나던 남자들이 다들 그 날로 연락을 끊어. 이젠 결혼 생각은 아예 접었어. (‘휴’ 한숨을 내뱉고) 담배만 는다.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인다.) 내가 이래서 이 작품 안한다고 한 건데. 난 이 작품 징그러워, 정말 징그러워. 저 원수 같은 연출이 꼬시는데 넘어 가가지구. 카드 빚 대신 갚아 준다는 말에 내가……. 오래된 상처를 후벼 파는 것 같아 너무 힘들어. 우울해 지고 맥 빠져……. (사이) 이러다가 나 폭발할 것 같아. (사이) 이제 서씨 아줌마 인생도 폭발할 차례네……. (서씨 역의 배우, 다시 연기를 시작한다.)

7장. < 인질(人質) >

서씨 지랄병이 하루하루 심해지는 겨. 걸음을 내딛음 칼끝이로 발부닥을 후벼 파는 것맹이로 아파 방이서 화장실을 못 가. 목심만 붙었지 이건 산송장이여. 우리 훈이가 고3이 돼서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가지왔는디, 전국서 백 등안에 든 거여. 담임선생님 말이 서울대 합격은 따논 당상이랴. ‘병든 몸뚱이 갖꼬 새깽이들한티 짐이 되어서는 안되겄다, 무당년 되갔고 우리 훈이 출셋길 막아서는 안되겄다, 우리 훈이 대핵교 들어가는 것만 보고 고만 살아야 겄다.’ 이렇게 맴을 먹고 이를 악물고 버텼어.

(사이) 근디, 그 날이 온 겨. (사이) 수능 날 아칙이였어. ‘오늘 만큼은 울 훈이 내가 아칙 밥 지어 맥여 보내야 겠다’ 싶어 칼끝을 걸어서 부엌이로 가서 밥상을 채렸네.

음악이 흐르고 이제 시공은 서씨 아들의 수능 시험일 새벽이다.

서씨 (방에서 나오는 아들을 보고 웃으며) 인났냐?

얼른 씻고 나와라. 밥은 먹고 가야제. (사이) 그러게, 에미가 오늘은 콘디숀이 좋네. (깜짝 놀라) 이게 먼 소리여? (불안한 마음으로 화장실 앞으로 가서) 훈아, 이게 먼 소리냐? (사이) 훈아! (사이, 화장실 문을 연다) 아가!! (사이) 머리에 이 피좀 보소. 혜영아! 혜영아!!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서씨 훈이가 화장실서 씨러진 겨. 하눌이 노랗고 눈깔이 디집히는디……. 응급차 불러 지 누이들이 몬야 태워 가고, 내는 뒤쫓아 간다고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는디, 이게 먼 조화여, 걸음을 걸어도 발이 암치가 않은 겨. (조명 Cut Out.)

8장. < 살신입절(殺身立節) >

서씨 공든 탑이 무너지랴? 내가 옛말 안 믿는다고 혔제? 우리 훈이 십년공부가 하루아칙에 무너진 겨. 불쌍헌 놈. (사이) 처음엔 기양 공부에 지쳐 씨러진 줄 알았지. 그동안 잼이 모지래서 그런갑다, 금방 깨어나겄제 했는디 일주일이 지내도 보름이 지내도 한 달이 지내도 이놈이 눈뜰 생각을 안 하는 겨. 지 에미 지랄병은 씻은 디끼 나았는디, 지 에미 나은 거 알면 조아 갖꼬 훌훌 털고 인날 거인디. 해가 넘어 올 1월에 이놈이 드러누운 지 딱 49일 되든 날 아칙에, 일이 터졌어.

의사랑 간호사들이 갑재기 왔다 갔다 허더니 내보고 병실서 나가 있으라는 겨. 먼 일이냐고 물었어.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떨어진다는 겨. 눈앞이 캄캄해지는 게 딱 까무러치겠더라고. 병실 밖 의자에 앉아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내가 정신을 똑바로 채려야 울 훈일 지켜주지, 다짐을 함서 지달르는디, 갑재기 눈꺼풀이 막 갬김서 잼이 쏟아지는 겨. 이년이 미쳤구나, 지 새깽이는 목심이 왔다 갔다 허는디 이 와중에 잼이 오다니. 허벅지를 쥐어뜯고 눈알을 후벼 파도 도저히 챔을 수가 없어. 잼이 든 건지 깬 건지 오락가락 허는디, 보니께 죽은 우리 엄니가 내 앞에 딱 섰어, 하얀 옷을 입고.

조명이 바뀌고 음악이 흐르면서 서씨의 꿈속 장면으로 이어진다.

서씨 엄니가 어뜨케 여기 온 겨? 엄니 돌아가셌잔여?

(사이) 야, 우리 훈이가 만이 아퍼라. 목심이 왔다갔다 혀라. 엄니, 엄니가 우리 훈이 좀 살려주씨요, 예? 우리 훈이 좀 살려주씨요. (사이)

내가라? 내가 무신 재주로 우리 훈이를 살려라? (사이) 누구한티 가라고라? (사이) 그람, 시방 내보고 무당 되란 소리여라? (사이) 안 되여라.

안혀라. 우리 훈이 장가가고 출세 허는디 문제 생김 어쩐 다요? (사이) 엄니! 엄니!! 어디 가씨요?! 우리 훈이 좀 살려달랑께요!!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서씨 정신을 채리고 본께 꿈이여. 그 질로 만신 아짐을 ?V 년 만 데비 ?어 갔어. 들어서니께, 묻지도 않았는디 ‘자네, 엄니 만나고 오는 질인가?’ 하는 겨. ‘그러게 내가 진작에 말허지 않았는가.

내를 보드라고. 내라고 어디 되고 자퍼 무당년 된 줄 아는가. 범한티 물려가선 정신만 채리면 살아 돌아올 수 있지만은 그 분들 한티 한 번 이름 불림, 숨 놓기 전에는 도망 못 가는 겨. 잔말 말고 내 따라 나서 드라고’ 이러는 겨. ‘우리 훈이가 지금 숨을 노을락 말락 허는디, 내가 가긴 어딜 간단 말이여라?’ 허니께 ‘자네 그 불쌍한 아들 살리고 자픔 잔말 말고 따라나서! 자네, 훈이가 무당질 허는 거 보고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거여. 다음 날 새복에 만신 아짐을 따라서 고향 남원에 있는 친정 선산을 올라갔어. 선산 꼭대기 큰 바위 앞에서 기도를 드렸어.

가장 최근의 과거로 돌아간다.

서씨 역의 배우가 무대 나무아래 단에 자리를 잡는다. 촛불을 하나 켠다.

서씨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조상님께 빕니다. 천지신명님께 빕니다. 불쌍한 우리 훈이, 목심만 살려주십시오. 시기시는대로 다 하겠습니다. 죽으람 죽겠습니다. 그러니 지발, 제 아들만 살려주십시오. 조상님께 빕니다. 천지신명님께 빕니다……. (이 때 서씨 입에서 저도 모를 공수가 터져 나온다.) 煮仄?사제 지석궁 사제 문 안 사제 문 밖에

사제 여 내던 사제 써 내던 사제 일직사제 월직사제 강림사제 사제를 여왔으니 지옥을 여우리라…….[1]

이 때, 어딘가에서 음성이 들려온다.

그(소리) 이제야 왔구나. 니 맘 다 안다. 자식 걱정 하는 에미 마음을 왜 모르겠느냐. 네 아들은 내가 잘 보살펴줄 것이다. 병도 나을 것이다. 허니 너는 이제라도 정해진 너의 길을 가라. 신의 제자로 살아라. 그게 너도 살고 네 아들도 살리는 길이다. 니가 안 가면 너 대신 니 아들이 그 길을 가야 한다. 어떻게 하겠느냐. 니가 가겠느냐?

서씨 (사이, 한참을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가겠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허니 지발, 지발 우리 훈이만 살려주십시오.

그(소리) 오냐. 니 아들은 이제 내가 놓아줄 것이다.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눈물을 흘리는 서씨 역의 배우, 속에서 끓어 나오는 소리로 노래한다.

서씨 해 저무는 저녁노을에 꽃은 시들고

날아가는 새들 따라 내 님도 가누나

내 홀로 우두커니 여기 남아서

밤하눌에 별을 보며 눈물 흘리네.

아이야 아이야 걱정 말어라

내 가거등 너는 살어 근심 말어라

뒷동산 뛰놀든 저 동무들도

해지면 저마다 집을 ?어 가누나

굽이굽이 천릿길을 돌고 돌아서

열 두 대신 부르는 길 내 이제 가노라

아이야 아이야 걱정 말어라

내 가거등 너는 살아 근심 말어라

서씨 역의 배우, 겉옷을 벗는다. 이제 서씨 역의 배우는 고등학교 남학생 교복을 입고 있고, 왼쪽 가슴에는 ‘正勳(정훈)’ 이라는 이름이 실제보다 크게 한자로 쓰여 있다.

서씨 역의 배우 (서럽게 목 놓아 운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가 나 때문에 무당 된 건데. 내가 무당 될까봐 엄마가 할 수 없이 된 건데. 다 알면서 못 되게 굴어서 정말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엄마 사랑해요……. (그렇게 한참을 운다.) 이제 엄마의 마지막 대사입니다.

서씨 (관객들에게) 너무 오래 지체했습니다. 인자 내 갑니다. 열 두 대신 부르시는 소리 따라, 내 길 ?어 갑니다.

서씨, 나무에 걸려있던 무복을 차려 입고 무대 뒤편으로 뒤편으로 꿈길을 걷듯이 사라진다. (F.O)

[1] 호남 지방 무가 中 사제막이 무가.

■ 당선소감/ "마지막까지 믿어주신 어머니께 작은 기쁨과 사랑을 전합니다"

스스로 불행한 운명이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세 번의 큰 좌절을 겪고서,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렸다. 절망스런 마음으로 허망한 쾌락 속에 나를 던져버리곤 했다. 주변의 반응이 차가워졌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 때, 머릿속에 어머니가 떠올랐다. 혐오스럽게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고도, 마지막까지 당신의 '새끼'를 믿어주고 지켜주는 단 한 사람, 어머니. 어머니를 배신할 수 없었다. 다시 연극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제부턴가, 못난 자식을 위해 당신의 인생을 온전히 희생해버린 어머니의 삶을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여겼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쓰기 시작한 부족하기 짝이 없는 글, 감사하게도 좋게 평가해 주신 덕분에 어머니께 작은 기쁨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못난 동생 때문에 맘고생 심했던 형제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빚을 갚은 듯싶어 홀가분하다.

가족 외에,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분이 있다. 다시 연극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긴 시간 온 마음으로 후원해 주신 국립극장의 김영봉 선생님. 희곡을 써보라고 처음 권해 주신 분도 김영봉 선생님이다. 앞으로 좋은 희곡을 쓰고, 좋은 연극을 만드는 것으로 은혜를 갚고자 한다. 더불어 항상 조언과 고언을 아끼지 않아준, 내가 몸담고 있는 '공연집단 현(顯)'의 두 동료, 재성, 희태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다시 한 번 어머니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싶다.

■ 인터뷰/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차별성 가진 작품 만들고파"

"늙어가시는 어머니께 무언가 해드리고 싶었는데, 이제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던 느낌입니다."

주정훈(34)씨의 고교 시절 꿈은 개그맨이었다. 삶은 터무니없이 심각했고,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입학 당시 학업성적이 전교 수석을 다툴 정도였고, "이 아이는 법조인이 될 거야"라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1학년 겨울에 병마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주씨는 바다를 보러 간다며 수업을 빼먹었고, 이외수의 시집을 끼고 술을 입에 대며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이미 신내림을 받았지만 자녀들 장래를 위해 끝까지 그 길만은 피하고 싶었던 어머니(63)는 결국 막내아들을 살리기 위해 무속인의 길을 선택했다.

주씨의 당선작은 병마에 걸린 아들을 위해 신내림을 받은 어머니가 무속인이 되기까지의 갈등을 다룬 자전적인 1인극이다. 특히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구성진 남도 사투리는 심사위원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주씨는 물론 부모님도 그 지역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 '생객혔제' '갑재기'같은 입말들이 오롯이 그의 머릿속에서만 탄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배우는 청각적인 요소를 관객들에게 전파하는 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운율있는 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지난해 겨울 최명희 선생의 <혼불> 과 그 속의 방언을 분석한 논문들을 읽으면서 대사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개그맨이 되기 위해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지만, 선배들의 졸업연극을 지켜보며 "너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주씨를 연극의 길로 이끌었다. 브레히트나 하이너 뮐러처럼 현실참여적인 연극을 하고 싶다는 그는 당선작의 맥을 이어 아버지, 형제들의 이야기를 다룬 가족 3부작을 완성한 뒤 본격적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극을 쓰겠다고 했다. 또 그가 선호하는 연극은 '관객모독'처럼 배우가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는 이른바 '극장주의 연극'이다. "연극은 말 그대로 연극인데 지금은 TV드라마, 영화, 뮤지컬 같은 다른 많은 매체들이 연극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연극만의 차별성을 가진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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