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밤 8시40분 여야의 법안처리 최종협상이 결렬된 직후 김형오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자 국회 본회의장 주변은 순식간에 전운에 휩싸였다.
본회의장 안에서 농성 중인 민주당 의원 40여명은 곧바로 등산용 로프와 고리를 허리에 차고 국회 경위와의 정면 충돌 가능성에 대비했다. 민주당은 질서유지권이 실행되는 순간 의장석에서 인간사슬을 만들 계획이다.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밤 11시40분 '경호권 발동 및 날치기 처리' 규탄대회도 열었다.
본회의장 앞에선 밤 8시부터 속속 도착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보좌진 및 당직자 300여명이 연좌농성을 벌였고, 출입구 곳곳을 에워쌌다. 바리케이트를 쌓는 과정에서 국회 경위들과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밤 10시쯤 국회 사무처가 본회의장 앞 소개 명령을 내릴 것이란 소문이 나돌자 원혜영 원내대표, 박병석 정책위의장, 박지원 의원 등 7, 8명의 의원이 보좌진 및 당직자 농성 대열에 긴급 투입됐다.
국회 사무처는 질서유지권이 발동되자마자 청사로 들어오는 모든 현관문을 잠그고 국회 경비대 소속 전경 170여명을 동원, 청사를 에워싼 채 외부인의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본회의장 점거해제에는 국회 경위 65명, 방호원 90명이 동원될 것이라고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밝혔다. 국회 사무처는 만약을 대비해 헌정기념관 직원 등도 임시로 국회 경위과로 인사발령냈다. 민주당은 사실상의 경호권 발동이라고 강력 항의했다. 최재성 대변인은 "경호권을 질서유지권이라는 낱말로 포장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동안 본회의장 내부 출입을 통제했던 민주당은 밤 10시 넘어 언론사마다 취재기자 1명씩 본회의장 출입 및 취재를 허용했다. 거대여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짓밟히는 모습을 보여 줘 여론의 역풍을 몰고 오겠다는 의도다. 민노당 이정희 의원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직접 본회의장 내부 상황을 생중계했다.
이에 앞서 오후 5시엔 강기갑 권영길 이정희 홍희덕 의원 등 민노당 의원 4명이 "본회의장 옥쇄투쟁은 입법전쟁 최후의 결전장이 될 것"이라며 본회의장 농성에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창조한국당 유한일 의원도 대열에 끼었다. 중간에 김 의장이 서울에 왔다는 소식이 농성장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결전이 임박했다는 비장감이 감돌았다. 남성 의원들은 노타이에 흰색 와이셔츠 검정 양복 차림으로 의상을 통일했다. 국회 경위들에게 쉽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다. 한 재선 의원은 몸싸움 과정에서 옷이 찢길 수 있다며 집에 있던 양복 중 가장 낡은 것으로 갈아 입고 싸움을 기다렸다.
가장 큰 관심 거리는 국회 경위들이 언제 어떤 식으로 본회의장에 진입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새벽 2~4시 사이에 진입할 것" "본회의장 불을 끈 상태에서 진입이 시도될 것" 등 추측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날 새벽 국회 사무처가 전원을 끊는 비상상황에 대비, 한밤 중에 랜턴 수십 개를 조달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재성 대변인은 "여당이 국회사무처에게 본회의장 조명을 모두 소등하고 언론인들의 취재를 원천 차단하는 것을 1차적 진압 작전의 목표로 설정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아침부터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정세균 대표는 오전 9시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고, 의원들도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직권상정 반대한다" 등의 문구를 외치며 전의를 불태웠다.
한나라당도 소속 의원들과 보좌진에게 31일까지 비상대기 지시를 내렸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협상 결렬 뒤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비서관들끼리도 충돌하는 것도 원치 않지만 만의 하나 불가피할 때는 도리가 없다"며 "폭력 사태를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힘의 행사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의원들도 이날 저녁 의원총회를 마친 뒤 여의도 인근에서 대기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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