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기축년 학계의 중심 화두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의 유별난 역동성을 생각하면 섣불리 지성의 흐름을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토건국가론에 머문 이명박 정부의 속도전 식 성장만능주의, 경제를 위해서라면 다른 가치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다는 대중의 분위기가 학계에 던지는 위기감의 정체는 뚜렷하다.
최근 학문 분야의 경계를 넘어 생태주의, 생명평화의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는 것은 이 위기감에 대한 학계의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본과 생태의 관계를 분석한 앙드레 고르의 <에콜로지카> 등 선진 연구결과가 활발히 소개되는 것도 2009년 학계의 지형도를 짐작하게 한다. 최근 발표된 글들을 통해 한국 생태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 에콜로지카>
■ 녹색 문맹, 위기의 이중주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ㆍ지역계획학)는 '환경과 생명' 겨울호에서 작금의 상황을 "신자유주의와 토건주의의 만남에서 비롯된 위기의 이중주"라고 진단한다. "환경을 '장기판의 졸'로 치부하고 경제적 가치 창출의 단순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집권 세력의 녹색 무지, 혹은 녹색 문맹은 그들의 심성 속에 깊숙이 각인된 '토건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10년 전의 그것과 달리 멜라민, 광우병 파동 등 먹을거리의 위기와 짝이 되어 찾아 온 현상에 주목한다. 그는 "두 위기가 한 몸이 되어 우리를 찾아온 것은,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추상 경제 부문(금융산업 등)을 넘어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구체 경제 부문(농업 등)으로까지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녹색 변혁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이상헌 한신대 교수(교양과정)는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저탄소 녹색 성장'의 한계를 짚는다. 그는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보급률 목표가 2030년 11%, 2050년 20%로 돼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100조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녹색 성장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각각 얼마씩 더 부담해야 하는지를 솔직히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녹색 재정 계획'이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21세기 생태주의 전망
문화이론 전문 계간지 '문화과학' 겨울호는 생태주의를 특집으로 다뤘다. 황대권 생명평화결사 공동체위원장은 좌담에서 "생태주의는 본래 서구의 관념이고, 거기에 맞춰서 운동을 해서는 가망이 없다"며 "녹색운동에서 시급한 것은 우리 전통과 관점에 입각한 대안적 세계관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적게 소유하고 많이 향유하는 것이 생태적 사회의 모습"이라며 "생태주의에 씌워진 금욕주의의 색채를 벗기고, 생태주의 사상과 문화적 관점을 결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면희 전북대 연구교수는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장회익의 '온생명론'을 거쳐온 한국 생태주의의 궤적을 설명한다. 한 교수는 "지구촌 환경위기가 깊어질수록 현 문명에 대한 성찰적 사유가 증대할 것"이라고 전망한 다음, "한국의 전통사상은 인간과 자연의 상생적 우주관을 지니고 있어 생태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줄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문화과학'은 마르크스주의와 생태주의의 흐름을 실천적으로 접목시키려는 최근의 연구 경향도 소개한다. 권정임 서울대 철학과 강사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담론인 마르크스 사회주의가 가진 한계를 생태주의의 관점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에 주목한다.
그는 "마르크스 사회주의론을 '생태사회주의론'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물리학 생태학 경제학 등을 포괄한 생태문화 프로그램의 창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민주주의의 녹색화를 위하여
정규호 '한살림 모심과 살림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녹색 대안을 찾아서> (아르케 발행)에 수록된 글을 통해 민주화 이후 환경운동이 당면한 현실을 진단한다. 녹색>
그는 현재의 신개발주의를 "민주화 이후 나름의 법적 절차와 제도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세계화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한 무한경쟁 논리이자 지방화 시대의 상대적 박탈감을 극복하기 위한 경쟁 논리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 연구원은 새만금 간척사업과 경주 방폐장 선정 등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원리가 왜곡되는 모습을 지적한 뒤, 미래세대의 생존권을 다룰 수 있도록 민주주의의 '녹색화'를 주장한다.
"권력 집단의 교체 차원을 넘어, 권력이 작동하는 제도적 틀을 개혁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인식이다. 그리고 환경운동도 ▦정책대안 운동 ▦정치운동 ▦풀뿌리 자치운동 등으로 분화ㆍ심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아?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