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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時和年豊'은 눈발에 흩날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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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時和年豊'은 눈발에 흩날리고

입력
2009.01.01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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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 즈음 이명박 대통령은 17대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시화연풍(時和年豊)'을 취임 첫 해의 국정포부를 담은 사자성어로 제시했다. 조선시대 임금이 새로 등극할 때 혹은 신년 어전회의에서 국정의 이상을 내거는 지표로 많이 사용된 이 말은 '나라가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뜻으로, 대선에서 확인된 시대정신 즉 국민통합과 경제 살리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 전 연말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 대통령은 '한천작우(旱天作雨)'를 새해 사자성어로 내놓았다. '어지러운 세상이 계속되고 백성이 도탄에 빠지면 하늘이 길을 열어 준다'는 의미였다.

내년 사자성어는 아직 오리무중

두 사자성어는 한때 잘 어울렸다. 나라를 구하라고 하늘이 열어준 길이 이 대통령이고, 그가 국민 대화합과 경제회생의 소임을 재차 약속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제 1년의 성과와 새 희망을 담아낼 말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약속은 깨지고 전망은 불투명하니 뭔가를 내놓기조차 쑥스러울 것이다.

성장과 일자리 창출 실적은 낯뜨겁고 정치권의 난장판 대치는 1년 동안 우리 사회를 오염시킨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을 잘 보여 준다. 좋게는 일본 한자능력검증협회가 올해의 한자로 선정했다는 '변(變)'이고, 나쁘게는 대만 연합보가 채택한 '난(亂)'이다.

돌이켜보면 이 대통령으로선 아쉽고 억울한 대목이 많을 것이다. 정권출범 초의 편향인사 논란과 그에 뒤이은 쇠고기 촛불정국만 아니었던들 글로벌 경제위기가 본격 엄습하기 전에 경제 살리기의 주춧돌을 놓았을 텐데, 그랬으면 글로벌 경제위기가 아무리 심각해도 미증유의 실업대란과 마이너스 성장이 예견되는 상황까지는 내몰리지 않았을 텐데, 또 반대세력으로부터 '전대미문의 허언필망(虛言必亡)'이라는 비아냥을 듣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역으로 올 한 해 이런 시련을 통해 이 대통령과 정권이 얻은 것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불도저류의 추진력과 '1인 활극'이 기업이나 서울시에서는 통하고 먹혔지만 국가경영의 리더십은 그것과 달라야 한다는 것, 결과와 실적만이 중요한 기업CEO와 달리 국가CEO는 과정과 소통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 무엇보다 민심의 바다가 부리는 변덕, 즉 배를 띄우는 순풍인 듯 하다가 돌연 배를 뒤집는 폭풍우로 변하는 이치를 잘 봤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 위에서 이 대통령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물량전과 속도전을 강조하고 공직사회의 자세 변화를 주문한다면 국가적 총동원체제를 못 갖출 리도 없다. 또 당장의 위기를 넘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위기가 만들어준 새로운 질서와 기회에 잘 적응해 국가위상 제고의 계기로 삼자는 말도 한층 감동스런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부정적 비판보다 긍정적 역발상으로 위기를 돌파하자는 말도 어울린다.

때마침 한 지인이 뉴욕의 재미동포 기업인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전달해왔다. <말로만 듣던 세기의 구조조정을 뉴욕 한복판에서 직접 눈으로 보면서 그 진행과정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위기가 한민족에게 변혁할 수 있는 절호의 호기로 보기 때문에 가벼운 흥분을 느낍니다.< p>

어느 누가 철옹성이자 미국의 상징이었던 3대 자동차회사의 몰락을 예상했으며 (리먼 브러더스 등) 거대 금융회사들이 그렇게 힘없이 쓰러질 수 있다고 생각했겠습니까.… (중략)…그러나 이 시기를 건너야 하는 수많은 서민들은 생각보다 춥고 어려운 기간을 건너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모두가 근본을 잊고 탐욕을 좇아 달려간 결과이기에 차분히 'back to basic'의 길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앞으로 새롭게 구축될 세계 각 국가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한민족이 어디에서 어떻게 향후 100년간 먹고 살 토대를 구축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위기 편승하는 파시즘행태 경계

그런데 이런 말을 귀담아 듣고 삭일 법한 이 대통령과 그 주변의 언행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뜬금없이 공직사회의 정체성을 문제삼고, 거리에 차가 많다고 나무란다. 자신들의 자세보다 국민들의 태도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투다. 위기에 편승하는 파시즘적 행태다. '시화연풍'은 그저 해본 소리였던 게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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