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대형 공기업 사장은 오락가락하는 정부 지침에 한숨이 앞선다고 했다. "10% 이상 감원하라는 지침을 받고서는 밤잠을 못 이뤘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청년 인턴을 채용하라는 지침이 떨어졌어요." 숙련 근로자를 해고하고 신참 직원을, 그것도 불과 몇 개월 같이 일할 인턴 직원을 채용해서 무엇을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얘기였다.
정부가 한쪽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 자르기를 독촉하고 있다. 공공기관에 이어 이번엔 민간 대기업에까지 시위를 겨누기 시작했다. 굳이 정부가 떠밀지 않아도 내년에 최악의 고용 한파가 불가피한 처지. "불필요한 인력을 줄여서 신규고용 창출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결국엔 '좋은 일자리'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경영효율'과 '고용안정(창출)'의 조화를 '일자리 나누기(잡 쉐어링)'에서 찾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기업 현장에서도 임금과 근로시간을 줄이고 직무 배치를 새롭게 하는 고통 분담을 통해 사람 자르기를 최소화하는 새로운 노사관계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하지만 정부의 일자리 창출정책은 거꾸로 노동 정책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일률적인 사람 자르기 식 구조조정,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최저임금제 완화 등의 노동 정책이 양질의 일자리를 줄이는 대신 불안정한 일자리만 늘린다는 것이다.
우선 청와대가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대기업들은 이 기회에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자발적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청와대는 이 발언에 대해 "구조조정이 곧 인력 감축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공공기관의 전례를 보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앞서 이 대통령이 인력 15% 감축을 선언한 한국농촌공사를 모범 사례로 극찬한 이후, 무려 69개 공공기관이 인력을 최소 10% 이상 줄이는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빈 자리는 결국 비정규직과 청년인턴들이 메울 수밖에 없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당장은 상대적으로 필요성이 떨어지는 인력을 줄이겠지만, 향후 해당 업무에 대한 민원이 들끓으면 결국 비정규직이나 청년 인턴 등 땜질식 채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악화(비정규직)가 양화(정규직)를 구축하는 격이라는 얘기다.
비정규직 사용기한을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연장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행 2년째가 되는 내년 7월 대량 해고가 우려된다는 이유이지만, 일자리 불안정성을 현격히 확대할 소지가 크다. 심지어 노동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제 적용대상 완화 조치는 가뜩이나 열악한 일자리의 질을 더욱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청년 실업 증가는 일자리 자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지난 10년여간 젊은이들이 도전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결과다. 일자리 창출대책이 단순히 비정규직, 청년 인턴, 4대강 하천정비 인력 등 숫자 늘리기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곤란한 이유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잡 쉐어링이나 사회 공공서비스 일자리 확충 등이 대안이 될 것"이라며 "청년들이 진정 원하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21세기형 뉴딜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잡셰어링(job sharing)이란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근로자 임금을 동결ㆍ삭감하는 대신, 그만큼 고용을 유지하는 것. 경기침체로 대량 실업이 우려될 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려는 취지다. 1980~90년대 네덜란드의 노사정 대타협(바세나르 협약)이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정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깎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는 '임금피크제'도 잡 셰어링의 한 형태.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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