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 수사의 주임검사인 임수빈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 갑자기 사의를 밝힘으로써 임 검사와 검찰 수뇌부가 사건 관련자 기소여부를 놓고 그 동안 마찰을 빚어온 사실이 알려졌다. 검찰은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얘기가 이미 검찰 내부에선 파다했다고 한다.
임 검사 스스로 기자들의 취재에 "사표와 관련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겠다"거나, "말할 수 없지만 내 원칙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 사의 표명의 배경을 짐작케 한다.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 일각의 전언도 있지만,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피하기 위해 겉으로 내세운 명분에 불과해 보인다.
MB 정부 출범 이후 검찰에서 정치ㆍ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 처리를 놓고 내부 갈등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선 반갑다. 갈등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MB 정부 하에서 온갖 정치적 외압을 받아온 검찰 조직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 반갑다. 법률가로서 소신을 굽히지 않은 주임검사의 기개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검찰 수뇌부의 태도가 실망스럽다. 외풍을 막아주지는 못할망정, 전도유망한 검사의 앞길을 끊어버린 셈이니 세월이 거꾸로 흐른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애초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하면서부터 논란은 뜨거웠다. 과연 검찰이 나설 문제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수사를 의뢰한 내용은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정부 협상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데, 법률가는 말할 것도 없고 법률적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이 보더라도, 구체적으로 누구의 명예를 어떻게 훼손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설사 PD수첩 보도가 과장 또는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언론중재나 민사소송 등의 절차에 따라 구제 받을 일이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법률적 상식을 가진 이들의 판단이었다. 정부가 피해 당사자의 고소가 아니라, '수사 의뢰'라는 다소 비겁한 방식으로 문제를 삼고, 검찰이 특별전담수사팀까지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나설 때 이미 이 수사는 '정치적' 성격을 뚜렷이 드러냈다.
비판이 일자 검찰은 기소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의혹 규명'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검찰 수사의 자의성만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과거 검찰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수사 요구가 높아질 때마다 "검찰은 기소를 전제로 수사를 한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번 수사는 이러한 입장과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결국 수사팀은 법률적 판단과 윗선의 압력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건 처리를 계속 늦춰왔다. 그 바람에 PD수첩 제작 책임자들은 6월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거의 반년 동안 집에도 가지 못한 채 사내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검찰은 늘 말해왔듯이 '1%도 안 되는' 정치적 사건을 잘못 처리해 스스로 신뢰를 까먹었다. 검찰 수뇌부가 PD수첩 수사에 집착하는 이유가 혹여 여권이 밀어붙이려 하는 방송개혁 시나리오와 결부된 것이 아니라면 임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잘못된 판단을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다. 이 시점에서 검찰 수뇌부가 외풍을 막아주지 못하면 일선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아직도 많은 '임 검사'들이 언제 또 그의 뒤를 따를지 모른다.
김상철 사회부 차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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