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기업들이 위기타개를 위한 비상경영체제에 잇따라 돌입하고 있다. 그러나 비상경영체제의 구체적인 실행과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경영전략 수립에는 업체의 특성에 따라 급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29일 대한상공회의소와 경영전략 전문 컨설팅업체인 AT커니가 우리나라 산업의 8개 업종, 8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내년 하반기에 'U'자형 경기회복을 예상하는 기업은 30%에 불과한 반면 앞으로 3~5년간 'L'자형의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닥칠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은 66%에 달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일반적인 경기 침체와 달리 글로벌 시장의 동반 침체를 수반하고, 가격 중심의 출혈 경쟁이 가속화하며 자체 보유 현금만으로 생존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 같은 장기 경기 침체는 기업의 근본적 경쟁력 강화를 통한 또 다른 성장의 기회를 준다.
포춘지(미국의 격주간지) 선정 100대 기업 명단은 통상 매년 5%가 교체되지만, 1970년 오일 쇼크와 2,000년 IT버블 붕괴 등의 경기 침체기엔 신규 기업들로 15%가 채워질 정도였다. 따라서 기업들은 닥쳐올 글로벌 장기 경기 침체에 대비해 생존만을 위한 버티기와 같은 일반적 대응이 아닌 새로운 성장 기회에 대한 적극적인 경영전략 강구가 시급하다.
경기 침체기에 기업들이 마련해야 할 비상경영체제의 구체적 실행과제를 AT커니와 공동으로 알아본다.
새로운 산업구조로의 변화 주도
불황기에 기업들은 '생존형 버티기'를 넘어 가격 및 물량 전쟁을 통해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선택적인 기업인수합병(M&A)를 통해 새로운 산업구조를 창출함으로써 강력한 시장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1998년 당시 세계 석유업계에서 1위였던 엑손(Exxon)은 4위의 모빌(Mobil)을 합병하여 현재까지 부동의 1위 자리의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세계 유가는 20년간 최저치를 기록하며 석유 업계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사실,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 전쟁을 시작한 것은 영국석유(BP)였다.
엑손은 미국의 아모코(Amoco)를 98년 8월에 합병하며 몸집을 키운 BP에 위협을 느껴 그 해 12월 모빌과의 합병으로 적극 대응했다. 여기에 엑손-모빌(ExxonMobil)은 합병이후 낮은 유가로 인한 수익 악화 속에서도 장기적인 유전 개발 프로젝트와 기존 보유 유전의 활용도 극대화를 위한 산유(産油) 기술 개발로 경쟁사를 압도하며 시장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재편
선진기업들은 장기 불황기에 핵심이 되는 사업과 제품군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캐논(Canon)은 일본의 장기 불황이 닥치기 직전까지 사업 다각화를 통한 공격적인 성장을 추구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장기 불황이 시작되자 태양전지 사업 등 사업 다각화를 위해 벌려놓았던 적자 사업들을 과감히 철수 또는 매각했다. 또 핵심기술로 보유했던 복사기와 프린터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한편 새로운 매출확대를 위해 핵심 보유 기술이던 광학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카메라 개발을 선도, 장기 불황 속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유지했다.
선진 기업들은 불황기에 가격에 민감해지는 소비자와 신흥 시장 개척을 위해서 초저가 시장 진출을 모색한다. 노키아(Nokia)는 2004년 초부터 100달러 미만의 저가 휴대폰을 개발하고 이를 인도 등 신흥시장에 공급함으로써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 또 미국 발 금융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비해 30달러 이하의 초저가 휴대전화를 개발하고 이를 아프리카 등 휴대전화 불모지에 판매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겠다는 전략을 최근 발표했다. 이 같은 적극적인 전략 구사를 통해 노키아는 2위 업체와 10% 이상 차이 나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획기적 비용절감
장기 침체 상황에서 기업은 위기때 마다 실행해왔던 통상 10% 정도의 경상비 절감만으로는 생존 및 변화를 이룰 수 없다. 근본적인 비용 집행구조의 변화를 통해 20~30%의 획기적인 비용절감을 해야만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향상을 꾀할 수 있다.
PC 제조업체인 델(Dell)은 2000년대 초 IT버블 붕괴에 따른 불황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추락하자 기존의 제조 아웃소싱 업체들을 재검토하고 단순 제조 뿐 아니라 제품개발 역량까지 보유한 대만 제조사들로 공급라인을 변경, 제품개발 속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비용을 절감했다. 이러한 원가절감 활동으로 확보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평균 10% 이상의 가격 인하를 단행해 시장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했고, 2001년 PC 시장이 5% 이상 축소되는 상황에서도 델은 10%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전략적 리스크 관리 강화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기 침체기에는 기업 조직 내 리스크 관리 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경영체계 전반에 리스크 관리 개념을 포함하는'전략적 리스크 관리체계'를 구축해야만 한다.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를 하는 듀폰(DuPont)은 안전제일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리스크 관리 마인드 확립을 최우선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방법 등에 대한 훈련을 통해 리스크 관리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또 '리스크 관리 네트워크'라는 인프라를 구축하여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파악하여 대처하는 전사적 리스크 관리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상장 기업은 10% 이상이 기업의 리스크 관리를 총괄하는 CRO(Chief Risk Officer)를 두고 있다. 선진 기업들의 관리체계로 활용되는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와 같이 리스크 관리에 있어서도 핵심리스크 지표(Key Risk Indicator)를 설정해 리스크를 사전 모니터링하고, 사후 관리까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장명훈 AT커니 파트너 Myounghoon.Jang@atkearne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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