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시인 박노해 씨 등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의 주역 4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고 한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설치된 이 위원회는 1979년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과 1989년 동의대 사태 등의 관련자를 민주화운동 인사로 인정, 논란을 불렀다. 따라서 이번 결정이 놀랄 일은 아니지만, 곧 폐지될 위원회의 숱한 '민주화운동' 판정이 과연 타당한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위원회는 이번 의결의 근거를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사노맹 활동을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10월부터 여러 차례 관련자 검거와 기소를 거쳐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박 씨와 백태웅 씨 등 주역들에게 무기징역 등 유죄를 확정했다. 당시 판결에 따르면, 사노맹은 노동자계급 중심의 무장봉기를 통한 정권 타도와 근본혁명을 꾀한 자생적 사회주의혁명 조직이었다.
위원회 의결의 근본적 문제점은 재심 등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것과 다름없다는 데 있다. 행정부 산하 위원회가 대법원이 '국가변란이 목적인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사노맹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보상까지 하는 것은 헌법질서에 어긋난다. 이는 1999년 김대중 정부가 이들을 특별 사면한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위원회가 1970ㆍ80년대의 공안사건을 "강압수사로 조작됐다"며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것은 그런대로 수긍할 측면이 있다. 그러나 남민전 관련자들이 예비군 총기를 탈취하고 재벌집 강도까지 저지른 것을 "항거와 자위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규정한 것은 망발이다.
시위대의 방화로 전투경찰 7명이 희생된 동의대 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운동 인사로 판정한 것도 국민의 양식에 반하는 일이었다. 맹목적일 만치 무리한 행보는 과거청산을 돕기보다 사회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시정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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