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은 18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퇴행적인 내용과 전향적인 내용을 함께 담은 대북 제의를 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북핵 해결이 선결과제"라면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6자 회담 당사국들과 함께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이 대통령은 "남북당국의 전면적인 대화'를 촉구하면서 '7ㆍ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ㆍ15 공동선언, 10ㆍ4 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하여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양면성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북핵 해결은 화해와 협력을 위한 '선결과제'가 아니라 '동시 추진과제'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먼저 완수하면 관계 개선도 고려해 볼 수 있고 대규모 경제지원도 해 줄 수 있다는 구상은 부시 행정부 1기에 네오콘이 추진했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비가역적인 핵 폐기(CVID)'와 '대담한 접근법(bold approach)'을 연상하게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순차적 접근법은 이미 폐기된 지 2년이 지났다. 미국이 북한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미국을 믿지 못하는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 및 핵 실험을 감행했고, 현실적인 대응수단이 없음을 인지한 부시 행정부가 정책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양자 관계 개선, 경제ㆍ에너지 지원과 동북아 지역협력을 동시행동의 원칙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 6자회담의 기본구도이다. 6자회담 참여자 각자의 의무사항에 대한 검증도 결국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북한이 핵을 우선 폐기하면 대규모 경제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비핵ㆍ개방 3000 계획을 퇴행적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처럼 퇴행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7ㆍ11 연설의 전체적인 기조는 전향적이다. 비록 남북 간에 합의된 문서에 묻어가는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6ㆍ15 공동선언 및 10ㆍ4 정상선언을 언급하면서 그 이행방안에 대해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김대중 정부 및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하고, 남한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북한이 '형님' 하며 굽히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그때까지의 대북정책 기조에서 벗어난 것이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국군포로와 이산가족 1세대 문제의 해결은 '남북한 모두의 윤리적 책무'라고 하면서, '특정 정권 차원이 아니라 민족 장래의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연설 당일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대북 제의를 한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제안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남북 간에 일어난 연이은 악재로 빛이 바랬다. 북한 당국은 유감을 표하긴 했지만, 단지 경계지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한 사건에 대한 공동조사를 거부했다. 금강산 관광은 중단이 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북측의 비방과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관한 남측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닫게 되었다.
대북특사로 돌파구 찾아야
대북 삐라 살포와 개성공단 중 어느 쪽이 남북 상생과 공영에 기여할 것인지는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판단을 흐리고 있는 형국이다.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특정 정권 차원이 아니라 민족 장래의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조망하고, 대통령의 최측근을 북한에 특사로 보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일부에서 추천한 바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의원보다는 오히려 이상득 의원이 적임이다. 북한에게서 '형님' 소리 듣겠다고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형님을 북한에 특사로 보내 화끈하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
임원혁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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