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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팔미도 105년 만에 시민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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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팔미도 105년 만에 시민 품으로

입력
2008.12.29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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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연안부두에서 남서쪽으로 15.7㎞, 뱃길로 50분 정도 가면 팔미도(八尾島)가 모습을 드러낸다. 면적 8만㎡의 이 꼬마 섬은 모래톱으로 연결된 두 섬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이 곳에는 1903년 6월1일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다.

등대가 세워진 이후 민간인 출입이 전면 통제됐던 팔미도가 105년 만인 내년 1월1일 일반에 개방된다. 꼬박 1세기를 보낸 뒤에야 팔미도 등대가 고독을 털어내는 것이다.

팔미도는 그 작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시대의 아픔을 멍에처럼 덮어쓰고 있다. 19세기말 제국주의 일본은 러시아와의 일전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이 곳에 등대를 세우도록 조선을 압박한 뒤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 곳 해상을 지배하게 된 일본은 결국 러ㆍ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등대는 한국전쟁 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명령을 받은 켈로 부대가 팔미도에 침투해 1950년 9월15일 0시 등대에 불을 밝혔고, 이불을 길잡이 삼아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됐다.

등대에도 변화가 생겼다. 높이 7.3m의 팔미도 등대는 점등 100주년이었던 2003년 퇴역해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대신 바로 옆에 높이 31m의 새 등대가 세워졌다. 새 등대는 전망대와 등탑, 위성항법시스템 등 최첨단시설을 갖췄다.

민간인들의 왕래가 자유롭게 되면서 팔미도는 해양생태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현재 팔미도에는 해군부대와 등대원 3명만 거주하고 있고, 민가가 없는 사실상 무인도이다. 이 때문에 이 곳에는 희귀한 동식물과 수려한 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특히 낙조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는 평가다.

시는 이 같은 빼어난 경관 이동로를 따라 주변에 산책로와 산림욕장을 내년 3월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또 인천상륙작전을 이끈 역사를 알리는 홍보관과 등대의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항로표지역사관, 근현대사를 조명할 수 있는 역사문화공원 등도 조성한다.

개방에 때맞춰 연안부두를 출발해 월미도~팔미도∼영종도~인천대교를 오가는 연안크루즈선을 운항하고, 하루 2,3차례 오가는 정기 여객선 노선도 신설한다. 하지만 섬에서 취사나 낚시는 금지되며 식수도 개인이 준비해야 한다.

인천시 조동암 문화진흥과장은 "팔미도는 우리나라 근대사를 조망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며 "특히 자연경관이 빼어나 일반인에게 개방되면 수도권 최대의 해양관광지로 각광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수 인천시장과 인천시민 1,200여명은 1일 새벽 '백년의 기다림, 함께 할 미래'라는 주제로 해맞이 행사를 갖는다.

송원영 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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