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 2위의 선박용 엔진 제조업체 두산엔진은 30일 원ㆍ달러 환율이 얼마로 마감되느냐에 따라 올 한 해 장사가 좌우될 판이다.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를 비롯한 이 회사의 파생상품 관련 손실은 지난 9월말, 환율 1,187.7원이 기준일 때 이미 9,428억원이었다. 그 때보다 환율이 100원 이상 높은 지금 수준으로 연말 환율이 결정되면 손실은 1조원을 훌쩍 넘길 태세다. 더구나 이 회사는 키코 계약에 따라 이달 은행에 900원대로 팔아야 하는 달러가 2억6,000만달러나 된다.
#2 요즘 국내 시중은행 외환딜러들은 자신의 실적을 위해서는 좀처럼 달러를 사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하루에 수십번씩이라도 환율 흐름을 예측해 달러를 사고파는 이들이지만 최소한 연말까지는 자신이 속한 은행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환율이 1원이라도 떨어지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A은행 딜러는 "매년 연말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연말환율이 민감한 상황"이라며 "지금은 조직의 이익이 훨씬 우선인 때"라고 말했다.
기업과 은행들의 운명을 가를 '연말환율'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매일 변하는 게 환율이지만 매년 마지막 날 환율은 그 해 기업들의 부채와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을 결정짓는 중요한 수치. 마지막 날 환율을 토대로 재무제표 결산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이 급등한 올해는 더욱 그렇다.
올해 마지막 외환시장 거래일은 30일. 원ㆍ달러 환율 10원 차이에 나라 전체로 수조원이 오갈 것이라는 예상 속에 당국도 환율을 낮추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피 마르는 기업ㆍ은행들
키코 피해업체 뿐 아니라 정유업체들도 연말 환율에 피가 마르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3분기 모든 정유사가 환차손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SK에너지가 300억원, GS칼텍스가 200억원 안팎의 환차손을 입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유업계는 그러나 9월말~10월말 사이에 수입한 원유에 대한 60~90일 기한부 어음(유전스)을 결제해야 하는 상황이라 오히려 달러 수요가 큰 상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율을 되려 급등시킬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해 답답한 상황이다.
항공기와 선박을 구매하거나 빌릴 때 대규모 외화부채가 발생하는 항공과 해운업계도 30일 환율에 비상이 걸렸다. 한진 그룹은 지난달말 기준으로 1조7,151억원의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울산의 중견 조선사인 세광중공업(옛 INP중공업)도 통화옵션 계약에 따라 연말에 6억7,000만달러를 895~942원에 매도해야 하는 등 연말 환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기업이 적잖다.
은행들은 요즘 최대 화두인 BIS비율이 환율과 관련이 깊다. 환율이 높아질수록 원화로 환산한 외화대출(위험가중자산)규모가 늘어 BIS 비율이 낮아지고 반대로 환율이 떨어지면 BIS 비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전운 감도는 외환시장
이 같은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외환당국 역시 연말환율 관리에 적극 나설 태세다. 실제 최근 3거래일 동안 환율은 40원 가까이 급락 양상을 보였다. 24일에는 당국의 대규모 달러매도 개입이 하락을 이끌었고, 26일에는 씨티그룹 본사의 한국씨티은행에 대한 8억달러 규모 자금지원 소식이 시장에 영향을 줬다.
당국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다각도로 진행중이다. 당국은 이미 시중은행에 연말환율 안정을 위한 협조를 당부하는 한편, 공기업에게도 환율상승을 초래할 수 있는 달러화 매수의 시기를 내년으로 미뤄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내심 당국은 1,250원선까지는 낮추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기업이나 은행들이 당국의 환율 낮추기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달러를 대거 사들인다든지 하는 역행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보여 가장 큰 변수는 역외 세력인 셈"이라고 말했다.
반짝 효과뿐, 부작용 우려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낮춘 환율이 불러올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연초 환율이 더욱 급등할 수 있는데다 당국의 움직임을 이용하려는 투기적 움직임도 벌써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6일 환율이 장 마감 1시간 여를 앞두고 갑자기 20원 가까이 되오른 것도 일부 대기업들이 3억~4억달러 상당의 달러를 사들인 영향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돌발악재가 없는 한, 연말환율은 다소 안정되겠지만 새해 환율은 그만큼 불안 위험을 쌓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