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문명의 충돌’로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세계적 석학 새뮤얼 헌팅턴 미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가 24일 타계했다고 미 언론들이 27일 보도했다. 향년 81세. 58년간 하버드대에서 강의와 연구를 계속해오다 2007년부터 강의를 그만둔 헌팅턴 교수는 40년간 여름휴가를 보냈던 매사추세츠주 휴양지 마서즈 빈야드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심부전증과 당뇨합병증으로 오래 투병해왔다.
헌팅턴이 1996년 발간한 ‘문명의 충돌’은 적잖은 논쟁의 여지에도 불구, 탈냉전이후 시대의 정치외교 이론 영역에서 ‘근본적인 전제’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지난 5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만든 이 책에서 탈냉전이후의 무력충돌은 국가간 이념적 갈등이 아닌 세게 주요 문명 사이의 문화ㆍ종교적 차이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팅턴은 이 이론을 위해 세계를 서구, 라틴, 이슬람, 아프리카, 그리스정교(러시아), 힌두, 일본, 중화 등 7~8개 문명권으로 나누었다. 그의 논거는 이슬람 극단세력에 의한 9ㆍ11 참사이후 뛰어난 통찰력으로 더욱 관심을 끌었다.‘문명의 충돌’은 전 세계 39개 언어로 번역됐고 세계를 읽는 새로운 지평을 마련했다는 칭송을 받았으나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를“서구와 그 이외 나머지 세계를 대립시키는 정신적 성향을 영속시킨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헌팅턴은 정치학자로서 초기에는 민간과 군의 관계, 쿠데타, 제3세계 정치ㆍ경제 발전 등에 대한 천착으로 명성을 얻었다. 1957년 발간된 첫번째 저서 ‘군인과 국가’는 해리 트루만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해임한 사례 등을 통해 민-군 관계를 정치적 이론의 틀로 분석한 책이다.
그는 만년에는 이민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2004년 ‘우리는 누구인가 : 미 국가 정체성에 대한 도전’을 저술했으나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충분히 미국에 동화되지 못하면 미국은 둘로 쪼개질 수 있다”고 한 책의 핵심 주제가 ‘반 이민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 책을 포함해 미국 정부와 민주화, 군의 정치, 민-군 관계, 비교정치, 정치발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17권의 단독 또는 공동 저서를 펴냈고 9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1927년 4월18일 뉴욕에서 태어난 헌팅턴은 18살에 예일대학을 졸업했고 시카고대에서 석사학위를 했으며 하버드대에서 23살 때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줄곧 하버드대 교수로서 재직했다. 그는 또 하버드대 국제관계연구소 소장과 존 올린 전략연구소 소장, 미국 정치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지미 카터 민주당 행정부 시절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안보기획조정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60년 지기인 헨리 로소브스키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헌팅턴은 하버드대를 위대하게 만든 학자”라고 말했다. 장례식은 마서즈 빈야드에서 치러질 예정이며 하버드 대학은 내년 봄에 추모 행사를 열 계획이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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