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국책은행으로서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비난대상이었던 산업은행이 최근 부쩍 분주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제침체 때문에 ‘위기 속 구원투수’로서 산은의 역할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 특히 대우조선해양, 쌍용차, 하이닉스반도체, 동부하이텍 등 과거 산은의 지원을 받았던 기업들이 매각 지연, 유동성 문제 등을 겪자, 산은 기업금융실은 주말도 반납하고 씨름 중이다.
사실 대우조선은 산은이 연초 매각을 공표할 때만 해도 올해 인수ㆍ합병(M&A) 시장의 ‘최대어’로 불렸고 한때 매각 가격 10조원설까지 나올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주요 인수 후보였던 두산이 도중하차하고 GS가 포스코와 공동으로 입찰 제안서를 냈다가 포기한 뒤 한화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한화가 인수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칫 매각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산은이 주채권은행인 쌍용차는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쌍용차 살리기’에 적극적이지 않고 노조와의 입장 차도 너무 커, 산은이 지원할 명분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장즈웨이 상하이차 부회장은 산은을 통한 긴급운영자금 및 연구개발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산은은 상하이차가 쌍용차에 지급해야 할 기술료 1,200억원과 함께 중국 2개 은행의 신용공여한도(2,000억원)에 대한 상하이차 보증 등을 선제조건으로 내걸었다. 대주주, 사측, 노조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데다 정부도 직접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쌍용차 사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대우조선에 이어 매각 작업이 시작된 하이닉스는 매각은 고사하고 당장의 유동성 위기 극복이 관건이다. 지난 주 외환ㆍ산업ㆍ우리ㆍ신한은행과 농협 등 하이닉스 채권단이 8,000억원의 자금을 하이닉스에 지원하는 방안을 확정함에 따라 유동성 위기의 ‘급한 불’은 껐지만 반도체 경기가 최악이어서 적자의 늪에서 탈출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보인다. 주채권은행은 외환은행이지만 신규자금과 증자 등에 산은이 3,500억원을 지원키로 해 산은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밖에 동부메탈의 매각 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과거 동부하이텍에 신디케이트론 형식으로 지원한 대금의 분할 상환이 늦어지는 등, 산은의 골칫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산은 관계자는 “갑작스런 글로벌 자금경색으로 매각 지연과 기업 유동성 문제 등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연말과 휴일에도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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