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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법관평가제와 사법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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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법관평가제와 사법 포퓰리즘

입력
2008.12.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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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변호사회가 법관평가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여 법조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 6,300여명이 서울지역 재판담당 법관 700여명의 자질과 품위, 재판 공정성, 사건처리 태도 등 17개 항목을 평가해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 시행 방법과 시기가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일단은 아이디어 차원이거나 아니면 법조계와 국민의 여론을 탐색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양날의 칼' 법관평가제

예상대로 법관들은 대부분 변호사가 법관을 평가한다는 발상 자체를 강하게 반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부 법관은 "법관도 국가 공무원인 만큼 법률서비스를 받는 국민, 특히 당사자를 대리하여 재판에 관여하는 변호사들이 평가를 하겠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뜻밖의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의 경우, 나라마다 방법은 다르지만 법관평가제를 도입한 곳이 적지 않다. 미국은 많은 주에서 재판이 끝나면 법원 행정당국이 사건 당사자 및 변호사에게 만족도를 설문 조사해 법원과 해당 법관이 참고자료로 삼도록 하고 있다. 법관 임명 때도 주 변호사회가 회원들의 의견을 들어 법관을 추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방변호사회가 법관에 대한 변호사들의 의견을 조사하여 법원에 전달, 업무에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시민과 변호사들이 공동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개별 법관을 평가, 상위 점수자 50명과 하위 50명을 언론에 공표하는 방식의 법관평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다루는 고위직 공무원인 법관에 대하여 국민이 어떤 형태로든 평가를 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너무도 당연한 권리라 하겠다. "감히 변호사가 법관을 평가하려 든다"고 흥분하는 법관이 있다면, 도리어 엘리트주의의 극치라는 비판에 직면할 뿐이다.

다만 법관평가제 도입 논의에 앞서 몇 가지 대목은 분명히 짚어야 할 것 같다. 총론적으로는 아무리 당연한 명제라도 각론에서는 신중히 연구, 검토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재판에서는 반드시 이기는 측과 지는 측이 있다. 따라서 사건의 당사자가 법관에 대하여 공정한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법관평가제는 자칫하면 인기에 영합하는 법관들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폐단을 낳을 수 있다. 당사자에게는 엄격하더라도 신속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법관이 좋은 평가를 받아야지,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무조건 인기 좋은 법관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면 사법발전에 오히려 장애가 될 위험이 크다.

그런 점에서 법관평가제에 앞서 사법자료의 공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의 판결만 일반에 공개한다. 당사자들의 상고이유서와 답변서는 공개하지 않아 대법원 판결이 과연 타당한지 평가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더욱이 1심과 2심은 판결조차 공개가 되지 않아서 사건의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판결의 타당성 평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법정보 공개 선행돼야

한 마디로 현재 우리나라는 사법에 관한한 '정보 암흑지대'이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객관적인 업무 평가가 가능하겠는가? 사법정보가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는 판ㆍ 검사의 업무처리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물론 사법의 투명성 제고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헌법의 공개재판주의는 재판 방청을 일반인에게 허용한다는 물리적 의미보다 사법정보를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는 정보공개가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 삼아 강조하자면, 법관평가제는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 사법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결코 사법부 독립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법관평가 자료를 법관 인사 등에 참고하는 것은 사법부 인사권자가 결정할 일이다. 변호사 단체나 시민사회 단체가 평가자료를 무기로 법관 인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자칫 '사법 포퓰리즘'의 재앙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김평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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