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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판계 결산 키워드 6/ 출판계, 갈등·불안·추락의 현실 꿰뚫고 희망·위안을 속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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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판계 결산 키워드 6/ 출판계, 갈등·불안·추락의 현실 꿰뚫고 희망·위안을 속삭이다

입력
2008.12.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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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 경제위기의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해넘이를 하고 있다. 정치 불안, 교육 불신, 사회갈등 확산, 청년실업, 자살 증가. 우리 사회에서 희망은 점점 낯설어져 가는 것인가. 하지만 한국일보 '책과 세상'은 책을 통해 세상과 희망을 보고자 했다. 올 한 해 '책과 세상'에 소개된 책들에서 6개의 키워드를 가려내, 지나가는 해를 돌아본다.

▦경제 위기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노선의 급선회가 이뤄짐에 따라 2008년 벽두부터 경제 문제는 초미의 화두였다. 그러나 노 정권의 '좌파 신자유주의'와 MB의 노선이 대중의 피부로 느끼기에는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우리 경제를 근본에서 돌아보는 책들이 주를 이뤘다.

우석훈의 <촌놈들의 제국주의> (개마고원), 장하준의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부키) 등은 새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무관하게, 본질적 측면을 천착했다. 우석훈의 <직선들의 대한민국> (웅진지식하우스)은 두 정권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논증한 대표적 저서로, MB의 대운하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경계의 눈길을 늦추지 않았다.

하반기 들어서는 30년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대안을 모색하는 기류가 뒤를 이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미래를 말하다> (현대졍제연구원북스)는 신자유주의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아니라 얼마든 변화될 수 있는 정책적 선택의 문제임을 논증, 주목받았다. 내적인 정책 오류와 외부의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폭풍에 직면한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도 뚜렷한 흐름을 형성했다. <거짓말 경제학> (오푸스), <대한민국 경제 빈곤의 카운트다운> (서해문집)은 한국 경제의 현실에 충실한 분석으로 관심을 끌었다. 불황에 맞춰 1929년의 대공황을 되돌아보는 <대공황 전후 세계경제> (동서문화)도 나왔다.

▦먹거리

조류독감 창궐의 상황을 그린 마이크 데이비스의 <조류 독감> (돌베개), 저자 자신이 광우병 환자인 D T 맥스의 <살인 단백질 이야기> (김영사), 한국 의사 유수민이 촛불시민에게 광우병에 대해 이야기한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지안), 미국 쇠고기 도축장의 불결한 상황을 고발한 아이스니츠의 <도살장> (시공사) 등은 이윤 추구에 함몰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추구하는 도축 환경을 저널리즘적 시각으로 고발했다. 윌리엄 레이몽의 <독소> (랜덤하우스코리아)는 공장식 단일 작물 재배 방식, 항생제 범벅이라 해도 좋을 가공식품의 해악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한편 완벽한 채식을 해결책으로 제안한 <죽음의 밥상> (산책자), 잡식 동물인 인간에게는 엄격한 유기 농산물보다 고기를 곁들이는 게 자연스럽다는 <잡식 동물의 딜레마> (다른세상) 등은 이 같은 비판적 시각에 대해 대안을 제시했다. <슬로우 푸드, 맛있는 혁명> (이후)은 지역의 농축산물로 직접 요리해 먹는 게 가장 건강한 식단이라며 반 패스트푸드 론을 폈다.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은 <땅의 옹호> (녹색평론사)에서 자기 지역에서 나온 먹거리를 강조했다.

24개 국가 30개 가정을 방문해 지구촌의 다양한 식문화를 살펴본 <헝그리 플래닛> (윌북)은 화려한 사진과 다채로운 편집으로 먹는 일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美國

미국이 제국으로 변질돼 일방주의ㆍ패권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적 시각에서 한 걸음 나아가 <미국의 종말> (프레시안북)까지 나왔다. 9ㆍ11 이후 미국이 파시스트 정부로 변질했다는 견해는 비난에 가까웠지만, 오바마 등장을 전후해 출판계에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이제 위기에 봉착한 미국을 살려내자는 실제적 접근이 주를 이뤘다.

오바마는 출판에서도 호재였다. 힐러리 클린턴과의 대권 경쟁 등 초반부터 출판계의 관심을 끌었다. 이어 <검은 케네디, 오바마의 리더십 10계명> (일송북), <버락 오바마, 인간적인 너무나> (사람소리), <오바마, 약속에서 권력으로> (한국과미국),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 (홍익) 등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오바마의 삶과 가치관을 분석하는 책들이 계속 나왔다. 정치인이 아니라 뛰어난 웅변가로서의 오바마를 분석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말> (중앙 북스)은 독특한 시각을 제공했다.

워렌 버핏은 여전히 주목받았다. <워렌 버핏 평전> (윌북)을 비롯해 <워렌 버핏, 주식 투자 이렇게 하라> (청림), <워렌 버핏, 한국의 가치 투지를 말하다> (살림Biz), <워렌 버핏 투자 노트> (국일증권연구소) 등 관련 서적이 줄을 이었다. 2008년 경기불황에도 막대한 수익을 올려 세계 1위의 부자로 등극했으나 재산의 85%를 기부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본가의 새로운 이미지 덕에 <워렌 버핏처럼 부자 되고 반기문처럼 생각하라> (무한)는 '한국적인' 책이 나오기도 했다.

▦조선시대

영상매체들의 사극 열풍, 팩션 붐에 힘입어 '조선시대'가 출판에서도 뚜렷한 경향으로 등장했다. 강단 역사학을 뒤집고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 주제가 다양해지는 등 '조선 트렌드'로 불릴만한 이슈로 등장했다.

<조선의 킹메이커> (역사의아침)는 정도전 황희 신숙주 조광조 유성룡 등 8명의 재사들이 왕을 옹립해 가는 과정을 통해 21세기형 참모의 모습을 제시했다. 같은 출판사의 <조선의 승부사들> 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운명을 헤치고 세상의 중심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비파 연주가, 박물학자, 상례 전문가, 역관, 의원들의 다채로운 인생 역정을 보여준다.

<조선이 버린 여인들> (글항아리)은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노비, 첩, 기생 등으로 살았던 조선 여인들의 생에 초점을 맞췄다. 세조에서 성종까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하층 여인 33명의 이야기다. <조선 남자, 아이를 키우다> (예담)는 근엄한 존재로만 알려져 온 사대부 선비들의 곰살궂고도 속깊은 아이 사랑을 전한다.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 (글항아리)은 조선시대 금서의 생성부터 소멸까지를 다뤄, 조선 사회의 소통 구조를 밝힌다. <조선사 클리닉> (청림)은 최근 사극과 영화, 팩션 등에서 조선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일일이 지적한다. <조선의 선비, 귀신과 통하다> (이숲)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귀신을 두고 벌어져 온 일들을 모은 컬트적 시선이 독특하다.

▦인디 여행

여행이 용이해지면서, 여행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엄청난 편차를 보이면서, 그에 맞는 다채로운 글쓰기 방식이 개발됐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 안내나 여행자의 단편적인 감상을 담은 흔한 여행서가 아닌, 여행에 대한 새로운 글쓰기를 보여주는 이런 책들은 '인디 여행' 바람을 일으켰다 할 만하다.

만화가 허영만, 산악인 박영석, 여행칼럼니스트 김태훈 등의 에세이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랜덤하우스), 소설가 김영하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도쿄를 지극히 여행자적인 시선으로 잡아낸 <김영하 여행자 도쿄> (아트북스), 배우 김호진-김지호 부부의 방콕 리포트 <호진ㆍ지호 나를 매혹시킨 도시 방콕> (브이북) 등 유명인들을 필자로 세운 새로운 여행은 여전히 단골 메뉴다.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 (예담)는 여행작가 유성용이 자신이 들른 16개국 50여개 도시의 기억을 살린 에세이인 반면, <비엔나 칸타빌레> (책과수다)는 베토벤, 브람스 등 독일 음악가들의 작품을 따라 현장을 둘러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예담)는 부부 여행자가 유럽을 2년 8개월 동안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과 풍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국 서부 해안 3,000㎞를 자전거로 질주한 이야기를 담은 <아메리칸 로드> (네이버), 고양이와 함께 한 세계여행담을 담은 <나의 낭만적인 고양이 트렁크> (웅진지식하우스) 등도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권하는 여행서의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준 책들이었다.

▦자기 치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더 이상 시 제목이 아니었다. 냉혹한 무한경쟁 시대에 직면한 한국인들에게 물질이나 권력 획득보다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들이 뚜렷이 선호됐다. 또 거창한 미래보다는 당장의 현재를 어떻게 충실히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책들에 사람들의 손이 갔다.

<시크릿> (살림)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베스트셀러 수위를 차지하며 이 같은 추세를 확인시켰다. 한국의 중견 작가들도 이 흐름에 가세했다. 공지영은 <네가 어떻게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오픈하우스), 이외수는 <하악하악> (해냄)을 통해 외부에 구애받지 말고 자기 식대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자전적 성장소설도 우리 내면의 슬픔과 역경을 위로하는 데 일조했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문학동네)을 비롯해 김려령의 소설 <완득이> (창비) 등은 가족과 다문화가정 등의 사회 문제와 연결되면서 출판시장에서 한동안 침체됐던 문학의 부활을 알린 작품들이다.

췌장암 말기인 한 교수의 적극적 삶을 그린 <마지막 강의> (살림)도 자기 치유 트렌드의 상징적 책이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갤러리온),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 (북로드) 등은 새삼 주목받는 심리학 관련 서적의 힘을 확인시켰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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