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기습 점거라는 민주당의 선공(先功)에 한나라당은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국회법(제110조와 113조)상 안건 처리는 국회의장이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의결을 선포할 때만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직권상정보다 본회의장 진입부터 고민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더구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단독상정 당시 야당의 물리력을 비판한 터라 진입을 위한 물리력 동원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의 본회의장 점거는 한나라당의 허를 찌른 '무혈입성(無血入城)'이었다. 민주당은 25일 오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와 전략회의를 열고 점거 'D_데이'를 26일로 정했다. 사전작업은 치밀하게 진행됐다.
25일 오후 9시께 신학용 김재균 의원이 3층 이윤성 국회부의장실 쪽 출입문을 통해 먼저 들어갔다. 당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26일 오전 9시로 예정된 의원총회를 30분 앞당긴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점거 시간은 함구, 보안에도 신경을 썼다. 26일 의총에서 원혜영 원내대표가 "지금부터 점거에 들어간다"고 선언하자마자 오전 8시50분께 의원 54명은 본회의장 뒤편 비상계단 문을 통해 일사불란하게 진입했다. 전날 들어가 있던 두 의원이 문을 열어준 것이다. 본회의장 정문 앞에서는 당직자 100여명이 한나라당의 진입에 대비, 연좌농성 중이다.
과거 직권상정 시 국회의장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던 2층 속기사 출입구도 원천 봉쇄했다. 이곳은 민주당 대표실과 인접해 있어 주변 복도에 소파, 의자 등을 쌓아둬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다. 이를 민주당은 촛불정국 당시 '명박산성'에 빗대 '민주산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오후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 만나 공조를 확인했고, 민노당 의원들도 점거에 합류키로 했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기습 점거를 애써 외면하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점거 소식을 듣고 황영철 원내부대표를 급파해 상황 파악에 들어갔고, 원내대표단도 본회의장 주변을 둘러봤다. 이 과정에서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과 언쟁했고 정세균 대표와도 마주쳤으나 서로 인사도 없이 지나쳤다.
한나라당은 오후 의원총회에서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박희태 대표는 "법안 처리에 신념을 가져달라"며 연내 강행처리 입장을 재확인했다. 의총이 후 100여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본청 로텐더홀 계단에서 국회정상화 촉구 결의문을 낭독했지만 맞은 편에서 농성 중인 민주당 의원들과는 눈길도 주고받지 않았다.
본회의장을 관리하는 국회사무처에도 불똥이 튀었다. 국회사무처는 영등포경찰서에 특수주거침입 혐의로 수사를 의뢰하고 출입문에 대한 지문채취 작업도 벌였다. 국회사무처와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열쇠 전문가를 동원해 문을 열었으며 사다리, 자전거체인은 물론 점액성 물질을 열쇠 구멍에 주입해 진입을 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본회의장의 거의 모든 문 안쪽에 잠금 장치들이 새로 설치돼 있었다. 이는 사무처와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준비한 증거"라고 사진을 제시하며 맞불을 놓았다. 민주당은 25일 밤 어떻게 본회의장 문을 열었는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김회경 기자 hermes@hk.co.kr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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