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카포티 지음ㆍ박현주 옮김/시공사 발행ㆍ505쪽ㆍ1만4,000원
뉴욕 맨해튼 거리를 활보하는 오드리 헵번의 커다란 눈망울이 인상적인 영화'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의 원작자인 트루먼 카포티(1924~1984). 그의 소설로는 1959년 미국 캔자스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났던 일가족 살인사건을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장편 <인 콜드 블러드> (1965)가 국내에 소개됐지만, 이번에 번역된 <차가운 벽> 에 실린 20개의 단편은 대중작가로 알려져 있는 그가 만만치않은 문학적 역량을 지닌 작가임을 확인시켜 준다. 차가운> 인>
수록작들은 그가 열아홉살이던 1943년부터 만년인 1982년까지 발표한 것으로, 발표 시기만큼이나 성향이 다양하다. 유년기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다룬 따뜻한 작품에서부터 세계와 타자들에 대한 냉소와 비판으로 일관하는 작품까지, 그가 평생 보여주었던 '분열적 인생관'을 함축한다.
화자가 일곱살 소년이었던 20년 전을 떠올리며 친구와 같았던 예순살 여인과 함께 과일 케이크를 굽던 추억을 들려주는 '크리스마스의 추억'(1956),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으로 사촌들의 손에서 컸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억(回憶)과 아버지와의 극적인 화해를 묘사한 자전소설'어떤 크리스마스'(1982) 등은 카포티의 따뜻한 인생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품들은 기만적인 대화를 일삼는 인간관계의 가식적 속성('자기만의 밍크코트')을 관찰하거나, 기차 안에서 우연히 합석한 세 인물이 여행을 하면서 느껴가는 서로에 대한 환멸감('밤의 나무')을 묘사하는 냉소적인 작품들이다. 동료 죄수를 사랑하는 늙은 죄수의 애틋한 심경을 묘파한'다이아몬드 기타'나 서로의 애인을 골라주며 타락에 탐닉하는 상류층 부부의 삶을 폭로한'모하비 사막' 등은 동성애와 이성애를 오갔던 작가의 복잡한 성 정체성, 세속적 성공을 꿈꾸었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허무함도 뚜렷이 자각하고 있었던 작가의 복합적인 심리를 잘 드러내는 것들이다.
소재적 측면 이외에도 주목할 만한 것은 외부 풍경에 빗대 인물의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드러내는 카포티 특유의 스타일이다. "높다란 나무들은 악의적인 달빛에 비쳐 신비하고 창백하게 보였고, 끊이지도 않고 기찻길 옆 양쪽에 죽 솟아 있었다. 나무 위의 하늘은 그 속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짙푸른 색으로, 여기저기 빛바랜 별들이 무리지어 있었다."('밤의 나무') "하늘은 천둥으로 갈라진 거울 같았고 깨진 유리커튼처럼 드팀새로 빗방울이 떨어져 내렸다"('머리 없는 매') 같은 문장들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카포티를 자신의 문체 스타일 훈련의 전범으로 삼았다는, 바로 그런 표현들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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