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여파일까. 2008년에도 가수들의 리메이크가 유독 활발했다. 작곡ㆍ작사 과정을 생략해도 되기 때문에 시간과 경제적 이점이 많은 리메이크 곡을 내세우는 가수들은 이미 문화불황이 시작된 2000년대 초부터 봇물처럼 쏟아졌기 때문에 새삼 새로운 트렌드는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자신의 곡으로 승부를 걸어도 큰 무리가 없는 아이돌 가수들과 싱어송라이터들마저 '재탕'의 밥상에 수저를 올린 경우가 많았다는 게 다르다.
연말 공연 중 가장 표를 구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은 빅뱅이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샘플링했고, 동방신기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다시 불렀으며, 정상급 송라이터인 조규찬과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은 오랜만의 컴백 앨범을 리메이크 앨범으로 꾸몄다.
이젠 시류에 편승하려는 몇몇 가수들의 경제적 선택으로만 보기엔 너무나 보편적인 앨범 형태가 되어버린 리메이크. 어떻게 봐야 할까.
■ 리메이크 확산은 '다양성의 상실'
인순이가 리메이크해 유명해진 노래 '거위의 꿈'의 원작자 김동률은 지난 여름 자신의 홈페이지에 '하소연'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 리메이크가 너무 퍼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내 노래 4, 5곡이 리메이크 됐는데 속상한 점이 많다"고 했다.
그의 한 측근은 "리메이크 앨범을 내는 가수들은 음반 출시 직전에야 원작자에게 리메이크 사실을 알리고 허락을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거절하기가 힘들어서 내심 원치 않더라도 리메이크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많다"고 말했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작곡가 등 원 권리자가 저작권협회에 권리를 신탁한 경우 리메이크를 원하는 사람은 협회를 통해 허락을 받도록 되어 있다. 곡의 원래 창작 의도를 크게 해치는 편곡이 아니라면 작곡가에게 직접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리메이크가 더 쉽게 이뤄지고, 심지어 원 권리자가 모르는 사이에 앨범이 만들어지는 일도 벌어진다.
한 음악평론가는 "법의 모호함 등의 이유로 원래 창작자의 의도와 권리를 가볍게 대하는 풍토가 자리잡았고 그 결과가 특히 불황기에 만들기 쉬운 리메이크 음악의 보편화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리메이크를 주로 하는 가수들은 무언가 실험적으로 보여주려는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은 문화를 다양하게 접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 리메이크 곡으로 '학습 효과'
이미 검증된 음악을 이용한 리메이크 앨범의 확산은 창작 의지를 꺾는 등 부작용이 많지만 그나마 고사한 음악시장에 돈을 돌게 하는 효과적인 상품이기 때문에 나쁘게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또한 과거의 음악을 접할 길 없는 10대들에게 지금 유행하는 음악 풍으로 새 단장한 리메이크 곡을 들려줌으로써 얻는 '학습효과'가 크다는 시각도 있다.
음악평론가 송기철씨는 "리메이크 앨범은 상업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기도 하지만 가수들은 일단 좋은 곡에 대한 선한 의미의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라며 "젊은 가수가 예전의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10대들이 과거의 곡을 훨씬 친근하고 쉽게 습득하는 좋은 통로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리메이크가 쉽지 않고 비용도 보통 앨범 제작과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단지 경제적 이유로 가수들이 리메이크 앨범을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많다.
팔리는 리메이크를 위해선 원곡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하고, 사람으로 치자면 옷을 다시 입히는 과정인 편곡이 뛰어나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로엔엔터테인먼트 김경진 팀장은 "사람들은 익히 알려진 곡보다 좋아하는 가수에 끌려서 음반을 사는 행태가 뚜렷하기 때문에 리메이크 이유를 상업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며 "편곡에 비용을 많이 들여야 하기에 제작비에 있어서 크게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품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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